"라임사태는 펀드 환매 중단 규모가 컸을 뿐만 아니라 '사기'가 들어있어서 역대급이었는데, 옵티머스 펀드도 굉장히 비슷한 수순을 보이고 있다.""증권사는 자산운용사가 서류 위·변조를 해서 사기를 쳤다고 하고, 운용사는 법무법인이 속였다고 하고... 정·관계 연루돼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게 라임이랑 판박이에요.. 사모펀드 자체의 신뢰가 걱정이죠."또 사모펀드에서 사기 혐의가 불거졌다. 이번엔 전체 펀드 규모 5500억원의 옵티머스자산운용사(옵티머스)다. 업계 관계자들은 라임 판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굴지의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이 이 가운데 4700억원이 넘는 펀드를 팔아 고객 피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사진=연합뉴스)
◇ 옵티머스 사태, 펀드 환매 중단→알고보니 서류 위·변조발단은 라임과 마찬가지로 펀드 환매 중단이었다. 옵티머스는 지난 18일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만기가 도래한 돈(각각 217억원·167억원)을 줄 수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증권사들은 옵티머스 측에 환매 불가 이유를 물었고, 옵티머스 측은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했다고 증권사들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름도 알 수 없는 기업들의 회사채가 발행한 사채에 투자했다는 설명이었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를 검찰에 고발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상품 자체가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매출 채권 자산으로 하는 상품이었고 계약서에도 다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환매 중단 사유를 물으니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 양도통지도달 확인서 등을 위변조했다고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면서 "옵티머스 측은 법무법인이 위조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고객들에게 펀드를 판 NH투자증권 측은 펀드를 기획·설계한 자산운용사에 속았고, 자산운용사는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법무법인이 또 속였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해당 펀드를 2~3년 전 부터 판매했고, 공공기관 매출 채권이라는 투자해 '안전성'을 강조한데다 연 3% 안팎의 비교적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고 판매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옵티머스 펀드는 출시 후 1조원 넘게 날개 돋힌듯 팔렸다. 그런데 이같은 옵티머스 펀드 자금의 대부분은 대부디케이에이엠씨, 씨피엔에스, 아트리파라다이스, 부띠크성지종합건설(엔드류종합건설의 후신), 라피크 등 5개 비상장 업체가 발행한 사모사채를 인수하는데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대부업체인 대부디케이에이엠씨, 부동산 중개 및 대리업체인 씨피엔에스와 라피크라는 업체의 대표는 동일인물로 대부업자 이모(45)씨다. 대부디케이에이엠씨는 허울은 대부업체이지만 실질적으로 부동산 관련 업체에 자금을 내보냈다. 그 역할을 한 회사가 트러스트올이라는 회사인데, 트러스트올에 빌려주면 이 돈을 다른 부동산 회사에 대줬다. 이 트러스트올은 상장폐지된 성지건설의 최상위 지배기업이고, 엠지비파트너스는 성지건설을 인수했다. 트러스트올, 엠지비파트너스도 모두 대표이사는 앞서 언급했던 이씨다.
결국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옵티머스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실제로는 2년여간 대부업체 대표에 몰아주기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사실상 판매사와 투자자에게 제공한 문서가 대부분 위조된 상황에서 특정 개인에게 자금이 집중 투입된 것으로, 앞으로 해당 대부업체 대표와 운용사 간 관계를 밝혀내는 것도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만기가 남은 잔액은 4월 말 기준 5565억원이다. NH투자증권이 4778억원으로 가장 많이 팔았고, 한국투자증권(577억원)·케이프투자증권(146억원) 순이다. 3사 비율이 전체 판매의 99%에 달한다. 이 금액이 모두 환매 연기될 경우, 피해 규모로만 라임 사태의 1조7000억원(4개 모펀드)에 이은 역대 두 번째다.
◇ 옵티머스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3일 옵티머스 사태가 심각해지자 사모펀드 전수 조사를 하라고 했지만, 이미 금융감독원은 작년 말 라임 사태 이후 사모펀드 조사를 펼치고 옵티머스를 문제의 자산운용사 리스트에 올렸다. 라임과 마찬가지로 사모사채 등 비(非) 시장성 자산 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펀드 만기와 보유 자산 만기간의 '미스매치'가 있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해 검사를 한 뒤 문제가 있던 자산운용사 가운데 하나"라면서 "사모사채라는게 비시장성 자산이다. 전체 자산 중 비시장성 자산이 많았다. 라임도 메자닌에 투자한 거라 비시장성이 높았는데 유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상 징후는 발견했지만 사모펀드의 보유 자산 등을 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서류의 위·변조까지는 속속들이 알 수 없었던게 현 금융감독 제도의 현실이다.
옵티머스의 전신은 2009년 이혁진(53)대표가 세운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에스크)다. 2013년 이 전 대표의 횡령·배임 의혹이 일었고 이사회는 이 대표를 해임하는 안건까지 의결했다. 하지만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던 신영증권이 이 전 대표 손을 들어주며 갈등을 일단락한 뒤 2015년에는 사명을 'AV자산운용'으로 바꿨다. 2년 뒤에는 '옵티머스자산운용'으로 또 한 번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금감원이 2018년 조사한 결과 이 전 대표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횡령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금감원의 제재 공시를 보면, 이 전 대표는 이사회 결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423회에 걸쳐 회사 계좌에서 자금을 이체 받아 10억원 이상을 개인 용도로 횡령해 사용했다.
이같은 문제가 불거지며 현재 김재현 대표 체제가 들어섰지만, 새로운 체제에서도 대부분 부동산 시행이나 사행성 사업 등에 치우진 사업을 펼쳤다. 현재 주주는 △양호 전 나라은행장(미국 LA에서 설립된 한인은행) 최대 주주(14.8%) △다함넷 △코스닥 상장사 옵트론텍 △농심캐피탈 △건물과사람들 △기타 개인주주 등이다.
옵티머스 자문단. 현재는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 화려한 자문단에 설립자와 관련 정계 연루설까지옵티머스 자문단에는 최근까지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인물들이 포진돼 있었다. 노무현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장관 (1대 금융감독원 원장·8대 증권감독원 원장·18대 은행감독원 원장),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이 자문단 멤버였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 전까지 원장으로 있던 재단법인 여시재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자문단 리스트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회사 홈페이지에도 존재했고 작년 말까지도 자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옵티머스는 전신 에스크를 세운 이 전 대표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 전 대표는 정치에 진출한 적도 있다. 지난 2012년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전략 공천을 서울 서초에 출마한 것. 낙선한 뒤에는 18대 대선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금융정책특보를 지냈다. 이 때문에 정·관계 연루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국펀드로 알려진 코링크PE, 청와대 비선 의혹이 있는 라임운용, 장하성 주중 대사의 친동생(장하원 대표)가 대표로 있는 디스커버리 운용 등 최근 논란이 된 자산운용사 등은 정권 실세 연루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옵티머스 건도 비슷한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면서 사모펀드 전체의 신뢰에 문제가 생길까 업계의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은 현재 옵티머스 회사 현장 실사를 하며 검사를 계속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서울중앙지검에 옵티머스 임직원 등을 사기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은 조사1부(오현철 부장검사)에 배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