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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6.25](3) 포항의 첫 상륙작전 '구암산 전투', 외신 대서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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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1일 포항 죽장면 구암산에서 치러진 첫 전투 아군 승리
7월 18일 미군의 포항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롤 모델이 되다

1950년 7월 현 학산방파제(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이뤄진 미군의 포항상륙작전. (사진=포항6.25 제공)

 

<6.25 70주년 특집 – 포항6.25> 3편

■ 방송 : 포항CBS <김유정의 톡톡동해안> FM 91.5 (17:05~17:30)
■ 진행 : 김유정 아나운서
■ 제작 : 김선영 PD
■ 대담 : 이상준 향토사학자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포항지역 6.25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상준 향토사학자 만나보죠. 안녕하세요?

◆ 이상준> 네, 안녕하세요 이상준입니다!

◇ 김유정> 6.25전쟁당시 포항은 낙동강 방어선 최후의 보루로서 아주 중요한 전투들이 이뤄졌던 지역이라고 하셨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전쟁 직전의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란스런 상황들 살펴봤죠.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포항지역 전투들 알아본다구요?

◆ 이상준> 네, 그렇습니다.

◇ 김유정> 먼저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해 전쟁이 발발한 이후 포항에는 언제 북한군이 들어왔나요?

◆ 이상준> 1950년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지역은 국군 제3사단이 미 해군과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7월 11일 인민군 766 부대 300명이 죽장면 구암산에 진출을 하여 포항 경비 사령대 소속 해군육전대와 최초로 교전을 벌입니다. 또한 8월 5일는 영덕이 점령되었고, 8월 9일에는 강구가 점령되었습니다. 인민군들은 영덕 강구전선에서 남진이 지체되자 미 해군과 공군의 지원이 집중되던 동해안 도로를 피해서 산간으로 남진하는 방법을 선택했지요. 인민군 유격대인 제766 부대가 5사단 일부와 연합해서 산악지대를 타고 신광면 비학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들은 흥해 부근을 거쳐서 8월 11일에는 포항시내에 진입하였습니다. 8월 11일 포항이 점령되자 그날 오후 미 8군사령관이 제40전투비행대대가 작전하던 영일(오천)비행장의 방어를 위해 브레들리 특수부대를 영일비행장에 급파하여 인민군들이 형산강을 넘어오지 못하게 저지했고, 포항시내에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민군은 큰 피해를 입고 점령 당일 포항 외곽 산악지대로 피해있었는데, 이 사실을 모른 미군들은 8월 13일 영일비행장의 비행기들을 일본으로 철수시키고, 8월 15일에 국군 민부대를 포항전선에 긴급 투입했습니다. 민부대는 8월 18일 대대 단독으로 포항을 다시 탈환하게 되는거죠.

◇ 김유정> 그럼 인민군에게 점령되었던 포항을 7일여일 만에 국군이 다시 수복한 셈이네요?

◆ 이상준> 그렇습니다. 그런데 수복을 하고 난 다음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치룬 양덕동 삿갓봉고지를 장악하였습니다. 하지만 9월 4일에는 인민군의 9월 공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 인민군을 여기에 투입시킵니다. 그래서 국군 제3사단 23연대는 천마산을 뺏기고 포항 두호동 선으로 후퇴했고, 9월 5일에는 다시 포항을 인민군에게 내어주고 형산강 남쪽으로 철수를 해야만 했지요. 9월 6일에는 포항과 인접한 영천으로 인민군이 진격해오자 형산강을 지키던 국군 제8사단 10연대를 영천전선으로 투입했습니다. 이 틈을 타 인민군 1개 연대가 9월 8일 포항 남쪽 후방인 운제산과 연일을 점령해버렸습니다. 오천비행장이 위험해 지자 미군 데이비드슨 특수임무부대를 만들어 미군과 국군은 운제산을 공격하여 탈환하였습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9월 16일부터 형산강 도하작전을 시도하였으나 실패를 했고, 9월 18일 작전에 성공, 포항을 다시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1950년 7월 18일 포항에 상륙한 LST 2척. (사진=포항6.25 제공)

 

◇ 김유정> 포항시내에서 이런 전투들이 있는 동안 포항 내륙 산간지역인 죽장면 일대에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죠?

◆ 이상준> 그렇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1950년 7월 11일부터 17일까지 있었던 죽장지구 구암산 전투입니다. 6‧25전쟁이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지 불과 4일 만에 동해안의 임원진 부근으로 아주 크고 유명한 북한의 게릴라 부대인 766부대가 배를 타고 상륙해 울진을 거쳐 포항 북쪽 영해-영덕 일대에 이르러 포항 서북방 30㎞쪽 구암산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항경비부 사령관은 해군 6전대를 긴급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해군 포항경비부 6전대는 북한군 게릴라부대를 소탕하는데, 북한군 생포 4명, 사살 161명이라는 큰 전과를 얻었습니다.

◇ 김유정> 구암산 전투는 결국 아군의 승리로 끝난거네요?

◆ 이상준> 그렇습니다.

◇ 김유정> 포항이 입지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바다가 있어서 상륙작전이 가능하기 때문이잖아요. 미군의 포항상륙작전이 있었다구요?

◆ 이상준> 일반사람들은 인천상륙작전, 장사상륙작전 외에 잘 모를텐데 포항 상륙작전이 아주 유명했습니다.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날 당시 미국 극동상륙부대인 제90기동부대 사령관 도일(J. H. Doyle) 소장은 일본에서 미군 제24사단 병력을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7월 5일이 되자 도일 사령관이 교육하고 있던 부대를 몰래 포항쪽으로 상륙시켜 물자를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 주둔중에 있던 미 제1기병사단이 21척의 LST에 3000명 정도의 미군들이 탑승을 하고, 7월 15일 요코스카항을 출항하여 7월 18일 05:00에 포항의 영일만 해역으로 상륙했습니다. 상륙한 미 제1기병사단은 포항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송 열차와 차량에 탑승하여 중부 전선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병력은 영덕 방면을 방어하고 있는 국군의 해안 방어작전을 지원하는 것에 투입되었습니다.

1950년 7월 22일 미군의 제2차상륙부대원들이 이동명령을 위해 송도에서 집결하고 있는 모습. 멀리 동빈내항이 보인다. (사진=포항6.25 제공)

 

◇ 김유정> 포항상륙작전이 생소하긴 했었는데, 당시 외국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구요?

◆ 이상준> 그렇습니다. 포항상륙작전은 당시 뉴욕, 런던 등 많은 외국의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7월 19일자 AP통신에서는 도쿄발로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 직후, 그 당시에 포항에서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시내 전신주에 걸어 두었던 "WELCOME U.S. ARMY"라는 현수막 사진을 '예상하지 않은 환영'이라는 제목과 함께 전세계에 타전하였습니다.

뉴욕타임즈 등 외국언론에 실린 포항 6.25 뉴스. (사진=포항6.25 제공)

 

◇ 김유정> 포항상륙작전은 이후에 어떤 결론을 가져왔습니까?

◆ 이상준> 포항 상륙작전은 6‧25전쟁 최초의 유엔군 상륙작전이며, 소규모의 상륙작전이었지만 계획, 준비, 실시단계에서 완벽한 상륙작전의 표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시일 내에 완수한 기록적인 작전이었고요. 이 포항상륙작전은 이후에 인천상륙작전의 롤 모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 김유정> 오늘은 포항의 중요한 전투들 가운데 첫 전투인 죽장 구암산 전투, 그리고 미군의 포항상륙작전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다음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상준> 네! 감사합니다!

◇ 김유정> 이상준 향토사학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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