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그동안 정의기억연대 사태와 관련한 일체의 논평을 삼가해 왔다. 공식적인 질문들이 종종 나왔지만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의 방역과 경제위기 극복에 집중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언급을 최소화 함으로써 논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조치였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날에도, 윤미향 당선인 의혹 해명 날에도 청와대의 침묵 기조는 이어졌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한 달 가까운 침묵을 깨고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입을 열었다. 정의연 마포 쉼터 소장이 숨진 다음 날이었다.
문 대통령은 8일 청와대 핵심 참모진들을 한 자리에 부른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위안부 운동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혼란스럽다.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다"며 운을 뗐다.
이어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결론으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결론부터 얘기하겠다며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 "숭고한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첫 마디에 못박았다.
현재 정의연 회계 누락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관계자가 목숨을 끊고 이에 대한 책임론까지 번지는 혼탁한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이 일종의 '교통 정리'에 나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위안부 운동이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 증언으로 태동한 순간부터, 세계 곳곳의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며 전세계적 운동으로 커가는 그 과정을 쭉 나열했다. 이어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어 당당하고 용기있게 행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공로를 언급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미국 하원과 프랑스 의회 증언, 유네스코 등재 촉구를 위한 국제 활동 등 이용수 할머니의 활동을 일일이 언급하며 노고를 치하한 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가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 대통령의 부연 설명은 위안부 운동의 '초심'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들의 참혹했던 삶에 대한 용기있는 증언을 시작으로 자발적이고 순수했던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가 있었기에 전세계적인 여성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는 것.
이는 역으로 위안부 운동의 '본질'을 깎아내리거나 훼손시키는 그 어떤 상황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우선, 이번 사태를 빌미로 위안부의 강제성마저 부정하는 반일종족주의자들이 문 대통령이 겨냥한 1호 경계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주익종 이승만학당 이사,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을 일삼는 류석춘 연세대 교수 등이 다시 활개를 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대의 손상은 옳지 않다"고 경고했다. 이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
아울러 회계 등에 철저하지 못했던 시민단체에도 에둘러 따끔한 경고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논란은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부금 또는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위안부 운동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강조한 문 대통령은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지금의 논란과 시련이 위안부 운동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민단체의 투명한 운영과 기부 문화의 성숙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노력할테니 생산적인 논의가 이어지도록 국민들도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위안부 운동의 '대의'와 역사성을 되짚은 것은 이번 사태를 역이용해 할머니들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세력을 차단하고, 윤 의원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도 자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