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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면엔]새벽배송 '쿠팡플렉스' 욕하며 다시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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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입차 시간까지 가봤자 끝없는 기다림…그렇다고 늦게 갈 수도 없고
쿠팡, 코로나19 수혜기업이라던데, 반토막 난 배송 단가
밤 꼴딱 샜지만 기름값 빼면 손에 쥐는 건 겨우 1만 5천원~2만원
"일거리 없으니까 욕하면서도 다시 하죠"…"쿠팡 밉지만, 불매 운동 안타까워"
"직접적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쿠팡, 신뢰 회복했으면"

[e면에는] 기사로 다 쓰지 못했던 내용을 담습니다. e커머스 업계 뒷얘기부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싣습니다. 한 발짝씩만 서로를 이해하면 조금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이야기에 반하는 게 있으면 anckyj@cbs.co.kr 연락주십시오. 그 이면을 또 들으러 가겠습니다.

쿠팡 플렉스 (사진=연합뉴스)

 

NOCUTBIZ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 현관문을 열고 새벽 배송 물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자정 전에만 주문하면 어떻게 오전 7시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건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값도 안 하는 2900원만 내면, 1890원짜리 라면 한 팩도 다음 날 아침 문 앞으로 배달됩니다. 간단합니다. 두 발 뻗고 잠든 시간, 누군가는 두 발로 열심히 달린 덕분입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습니다. 거리두기로 비어진 공간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채워졌습니다.

스포츠 구단 응원단장 이현수(가명·35) 씨도 멀어진 자리를 이어주는 사람들 중의 한 명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경기장에서 사람들의 함성으로 먹고 사는 이씨지만, 2월 중순부터 모든 경기가 멈춰버렸습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이씨는 경기 비시즌일 때는 각종 행사를 뛰며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돈보다도 사람들 웃음과 박수에 살 맛난다던 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줄줄이 있던 결혼식, 돌잔치 사회마저 끊어버렸습니다.

33개월 된 아들을 둔 이씨는, 요즘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뛰어들고 있습니다. 배민커넥터도 하고, 섬에 가서 일손을 돕기도 합니다. 건설 현장에도 가봤지만 코로나19로 공사도 대부분 중단됐습니다.

쿠팡 플렉스도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낮에는 다른 임시직을, 새벽에도 쿠팡 플렉서로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한 거죠.

플렉스? 그 Flex? 젊은 애들이 명품으로 '플렉스' 한다는 그 플렉스? 네, 그 플렉스와 쿠팡 플렉스(coupang Flex) 스펠링은 같습니다. 근데 어째 쿠팡 플렉스는 이와 거리가 멀더군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아무나 못 합니다

쿠팡 플렉스 지원은 쉽습니다. '플렉스' 앱을 깔고 휴대전화 번호나 배달 가능 지역 등 본인에 대한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곧바로 업무 신청할 수 있습니다.

새벽 배송의 경우 오후 2시쯤 신청하면 보통은 7시~9시에 (확정) 콜이 온다고 합니다.

지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배정받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선착순인가 싶어 눈 뜨자마자 바로 신청을 넣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무슨 기준인지, 어떤 알고리즘으로 배정받는지 플렉스 지원자들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안타깝고 속상한 건, 그 50% 확률에 저녁 시간을 배팅해야 하는 겁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쿠팡 플렉서 지원을 하면, 다른 일은 사실상 할 수 없거든요.

배정콜을 받으면 새벽 2시 반까지는 신청한 지역 캠프로 가야 합니다. 그때부터 물건을 다 배송할 때까지, 보통 새벽 6시~7시까지는 꼬박 밤을 새워야 합니다. 새벽 배송 나가기 전엔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차 사고도 안나고, 배달 사고도 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플렉스 뛰기 전에도 일하고, 플렉서로 새벽에도 일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좋겠죠. 하지만 다른 알바를 신청했다가 만약 플렉스 배정도 받게 되면 두 가지 일이 겹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둘 중의 하나는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거죠. 약속을 못 지키면 당연히 페널티가 따릅니다. 일자리 하나하나가 소중한데 신뢰를 깎고 싶지도 않고요.

고객은 새벽 배송 주문할 때, 손으로 몇 번 두드리면 끝이지만, 플렉서 지원자들은 '새벽 배송 신청' 누르는 손끝에 인내심과, 기회비용에 대한 철저한 계산, 이 모든 걸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기다림 또 기다림, 그 끝엔

쿠팡 플렉스 (사진=쿠팡 제공)

 

운 좋게 플렉스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럼 새벽 2시 반까지 오라는 문자가 옵니다. 보통은 1시 30분쯤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나가죠.

캠프에 도착하면, 이미 주차장엔 차들로 가득합니다. 모두 새벽 플렉스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분들이죠.

문제는 약속한 새벽 2시 30분까지 가도,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송할 물건을 받을 때까지, 정확히는 쿠팡에서 배송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이씨는 이게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1시간~1시간 반, 많게는 2시간까지 그저 차 안에서 시동을 켜고 기다려야 합니다. 당연히 기다리는 시간은 업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 사정이 있겠지' 이해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2시 반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데, 물품을 실은 차량이 새벽 3시에나 들어오는 걸 여러 번 보면서, "매번 이런 식이면 반드시 새벽 2시 반까지 꼭 오라고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2시간의 기다림 끝에 배송할 물건을 싣고서 출발합니다. 배송 신청 문자에는 '인당 40박스 미만'으로 받을 수 있다고 돼 있긴 한데, 10번을 나가면서 20개 넘게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플렉서는 고작 7개를 받은 날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기름값도 벌지 못한 셈입니다.

배송 물건과 배송 지역에 따라 단가가 다른데요, 이씨의 배달 지역 경우엔, 일반 제품은 대략 1천원, 신선식품은 1100~1300원입니다. 배송 물량에 따라 그날 벌이가 결정됩니다.

새벽 플렉서 배송 단가가 떨어진 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씨는 "작년 11월 무렵, 소일거리 삼아 새벽 플렉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단가는 지금의 두 배는 됐다"고 합니다. 일반 박스 하나에 2천원 정도 해서 박스 스무개를 채 못 돌려도 땀의 대가는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무개(가 안되지만 받았다 치고)를 배송하면 하나에 1천원씩, 2만원에서 최대 2만 6천원까지(신선식품만 배송할 경우엔,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음)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기름값은 따로 주지 않습니다.

새벽 1시 반부터 7시까지 꼬박 밤을 새우고, 5천원 정도의 유류비 빼면 1만 5~2만원 겨우 주머니에 넣는 셈입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믿어요, 그런데 땀의 농도가 참 옅네요"이씨의 입에선 한숨만 나옵니다.

쿠팡 새벽 배송 주문량은 급증했다는데, 배송 단가는 왜 내려간 걸까요?

아이돌 태사자 출신 김형준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공개한 쿠팡 플렉스 새벽배송 모습. 온라인과 방송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캡처=김형준 인스타그램)

 

쿠팡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코로나19 초창기만 해도 건당 단가는 최고 230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고액 알바'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는데요, '3만명의 직간접 고용 창출'이라고 쿠팡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이 덕분입니다.

그러나 지금 '새벽 배송' 단가는 5월 들어 반토막이 났습니다. 배송 물건이 박스냐, 비닐 포장이냐에 따라 혹은 신선식품이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새벽 배송 단가는 평균 1150~1200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지역은 박스 800원, 비닐은 650원까지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쿠팡은 "배송 단가는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따라 책정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가는 "매일 바뀐다"는데요, 그날그날 주문량과 플렉서 신청 수에 따라서, 또 배송 난이도, 배송 지역이나 날씨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겁니다. 여기서 배송 난이도는 아파트, 빌라, 주택가 등에 따라 다르고 가벼운 물건인지 물처럼 무거운 것인지 등 배송의 어려움을 뜻합니다.

즉 . 배송 물량이 쿠팡 플렉서보다 많으면 단가가 높아지고, 쿠팡플렉서가 물량보다 많으면 단가는 내려갑니다. 쿠팡 관계자는 "정확한 쿠팡플렉서 수나 배송 단가를 공개하기 어렵다"며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배송 단가가 변동하기 때문에 일괄적인 단가 측정은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서울에서도 강남, 서초 지역은 수도권보다 100원~150원 정도 더 높게 책정되긴 하더군요.

"세 번은 해봐야지 했지만, 두 번 하고서 이건 도저히 할 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10일 중 8일이 배송 물량 20개 미만", "최저 시급이 발끝도 못 미친다", "얻은 게 있다면 세상에 쉬운 건 역시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결국 쿠팡에 이득을 주는 구조일뿐, 분류 배송 시간 따지면 시간당 인건비는 유류세 제하고 거의 안 나온다" "대기 시간만 두시간에 박스 건당 800원.. 스트레스 장난 아니네요"

플렉서들은 각자 차에서 기다렸다 박스 챙겨 떠나기 바빠, 서로 말 섞을 여유조차 없습니다. 다만, 포털 블로그에 올라온 쿠팡 플렉스 후기를 보며,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다"는 걸 느낀다고 합니다.

그럼 새벽 배송을 없애야 할까요?

이씨는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손사래 칩니다. 쿠팡 플렉스, 특히 새벽 배송을 위해 차를 몰고 집에서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열악한 처우를 알면서도 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생계 수단이 중단됐고, 일거리를 찾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온 것입니다.

직원 복지라야 모든 음료를 300원에 제공하는 자판기 한 대가 전부라지만, 몇 푼 벌자고 몇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게 하는 쿠팡도 밉지만, 그럼에도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는 거죠.

일을 마치는 대로 곧바로 돈을 받을 수 있고, 경력이나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건 쿠팡 플렉스의 장점입니다. 운전할 줄 알고 배달 사고만 안내 면 되니까. 플렉서로 지원하는 여성도 꽤 눈에 띈다고 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기에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도 있고요.

이씨는 물류센터 집단감염으로 불거진 '쿠팡 불매운동'도 가슴 아프다고 말합니다. 쿠팡이 안일하게 대처한 건 큰 잘못이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수록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건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쿠팡 새벽 배송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습니다. 힘들게 잡았더니 빛바랜 별이네요.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 한창 크는 아이 입에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넣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쿠팡 플렉스를 싫다고 욕하면서도 결국 다시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이 씨는 플렉스 앱을 엽니다. 오늘은 조금 덜 기다릴 수 있길 바라며. 물건 하나라도 더 배정받을 수 있길 희망하며. 얼른 코로나19가 종식돼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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