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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증거 오염에 '12년형→무죄'…기본 안 지킨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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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서 '유죄' 특수강도 강간사건 항소심에선 '무죄'
"흉기에 묻은 유전자 정보 수사 과정서 오염 가능성"
"범행 현장서 오염 보호 장비 착용도 안 해"

제주지방법원. (사진=고상현 기자)

 

1심에서 징역 12년이 나온 '특수강도 강간' 사건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재판부가 핵심 증거였던 범행 도구의 증거 가치가 경찰의 잘못된 증거 수집 방법으로 오염됐다고 본 것이다.

◇ CCTV 화질 떨어져…범인 인상착의도 피고인과 달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는 특수강도 강간 혐의로 기소된 고모(64)씨에 대한 징역 12년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고 씨는 지난해 7월 8일 오전 2시쯤 금품을 강탈하기 위해 제주시 일도2동 한 주택에 침입했다가 자고 있던 피해자(19‧여)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우선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도 주요 증거였던 범행 장소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만으로 "피고인을 피해자 주거지에 침입한 범인으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봤다.

이 영상에는 사건 전후 피해자 주거지 뒷골목을 이동하는 검은색 옷차림의 사람이 촬영돼 있지만,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아 그 자체로 피고인과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진술한 범인 인상착의도 피고인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며 "피해자 진술만으로 피해자가 목격한 범인이 피고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유력 증거 가치 초동 수사 과정서 오염"

(사진=자료사진)

 

무엇보다도 가장 유력한 증거였던 범행에 사용된 흉기에 대한 유전자 감정 결과마저 항소심 재판부는 초동 수사 과정에서 증거가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흉기에는 동일 부계(父系)의 남성 여부만 확인이 가능한 유전자 감정 결과가 나왔는데, 피고인뿐만 아니라 같은 성 씨인 제주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의 유전자 정보와도 상당 부분 일치한 것이다.

특히 판결문에 따르면 현장 출동 경찰관 10여 명은 범행 현장에서 장갑과 마스크 등 오염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드나들었다. 흉기도 곧바로 현장에서 확보하지 못해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피해자 어머니로부터 임의제출 받았다.

'경찰청 과학수사 기본규칙'상 초동 경찰관과 과학수사요원은 범죄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한다. 또 증거물의 수집 단계에서 현장 참여자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수사 기본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핵심 증거물의 가치를 떨어트린 것이다. 결국 유죄로 인정했던 1심 재판부와는 다르게 핵심 증거의 증명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이 일관되지 않게 변명하고, 이전에도 유사한 범행을 저지른 적이 있는 등 간접적인 정황만으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선고 직후 검찰은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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