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25일 이뤄진 2차 기자회견 당시 이용수(93) 여성인권운동가가 "이것을 제가 읽기에는 좀 힘들다.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다"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입장문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지난 7일 1차 기자회견 이후 18일 만에 나온 이 입장문은 이 여성인권운동가가 대중 앞에 나서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빨리 생각이 나지 않는다"던 그가 오랜 시간을 들여 다듬고 고친 내용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인권운동가는 "나는 위안부였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카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저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다"고 위안부 투쟁에 뛰어든 세월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긴 투쟁에도 문제 해결은 요원했다. 이 여성인권운동가는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언급했지만, 이후 전개된 상황은 이와 달랐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을 기대했지만, 그 같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면서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동안 일궈 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연 후원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 여성인권운동가는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라는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한·일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실현 가능한 방안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들 간 공동행동 계획 추진 △세계 청소년들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인권교육관을 건립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연구 진행 및 실질적 대안·행동을 만들 기구 조성 등이다.
이 여성인권운동가는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이 이뤄 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 운동이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한 발을 내딛어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결국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가 기자회견을 통해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해 온 것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이 여성인권운동가와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최봉태 변호사는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가 가리키는 지점은 언론"이라면서 "가짜뉴스 양산하는 한·일 언론들로 인해 건전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양국 사법부가 피해자의 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현재 동일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만 한·일 언론들이 사실대로 보도해 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정의연은 입장문을 통해 "오늘 할머니께서 세세하게 피해 사실을 말씀하신 것으로 안다"면서 "가해자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이행해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더욱더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한 기자회견문 전문 |
저는 '위안부'였습니다.
그냥 '위안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대만 주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강제 동원 '위안부' 피해자였습니다.
해방 이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제 삶의 상처를 대중에게 공개했던 것이 1992년 6월25일입니다. 차마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 제 자신이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당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거짓으로 피해를 접수했었습니다.
이후 1992년 6월 29일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우리 인류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문제 해결과 인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간 존재도 몰랐던 우리 피해 할머니들은 각자 겪은 참상과 인권유린을 이야기하며 부둥켜안고 눈물로 아픔을 함께 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3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을 통해 손가락질과 거짓 속에 부끄러웠던 이용수에서 오롯한 내 자신 이용수를 찾았습니다. 먼저 가신 피해자 언니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저 이용수가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무성의와 이리저리 얽힌 국제 관계 속에서 그 결실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기자회견과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말씀을 감히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며, 앞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제 기자회견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제가 기대하거나 예상했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30년 동지로 믿었던 이들의 행태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 등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는 꼭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의 공개, 그리고 그 동안 일궈온 투쟁의 성과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후, 참 힘든 세월을 지내왔습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이 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부단히 다 잡아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부탁 아닌 부탁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현재 드러난 문제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동안 이뤄온 시민의식에 기반하여 교정되고 수정되어 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길에 '시민 주도 방식', '30년 투쟁의 성과 계승', '과정의 투명성 확보' 3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전제하에 향후 제가 생각하는 활동 방향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조속히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많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책임성을 갖고 조속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 지난번 입장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구체적 교류 방안 및 양국 국민 간 공동행동 등 계획을 만들고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한일 양국을 비롯한 세계 청소년들이 전쟁으로 평화와 인권이 유린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체험할 수 있는 평화 인권 교육관 건립을 추진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번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를 진행하고 실질적인 대안과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를 새롭게 구성하여 조속히 피해 구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앞서 말씀드린 것들이 소수 명망가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뤄온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번째,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개방성과 투명성에 기반한 운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사업의 선정부터 운영 규정, 시민의 참여 방안, 과정의 공유와 결과의 검증까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그동안 이 운동이 시민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해 온 만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활동가, 그리고 국민 여러분 모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당혹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투쟁 과정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 과정이 복잡해질 듯 합니다. 제겐 운동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이 계십니다. 먼저 한 발을 내디뎌 새로운 길을 열어오신 분들께서 밝은 지혜로 시민과 함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3세입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하게 당해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그 길을 닦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함께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두의 한 걸음을 이제 국민이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