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전북대 이세종 광장에서 열린 추모식, 이세종 열사의 대형 영정사진 (사진=송승민 기자)
"이세종 열사는 수많은 대학생이 거리에 나와 행진할 때 가장 앞자리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던 의로운 사람이다."
신군부에 맞서 이 열사와 함께 농성했던 조혜경(수학과·79학번)씨의 말이다.
전북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이 열사는 1980년 5월 17일 오후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계엄군을 상대로 농성을 하다, 다음 날 새벽 1시 반쯤 학생회관 앞에서 온 몸이 멍들고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계업무를 하던 이 열사는 계엄군에 쫓기면서도 '계엄군이 전북대로 진입한다'는 소식을 학생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최초 희생자인 이 열사를 기리는 추모식이 전북 전주에서 잇따라 열렸다.
17일 오후 전북대 이세종 광장과 18일 오전 전라고에서 열린 추모식엔 5·18구속부상자회 회원과 대학 학우, 모교 후배들이 참석했다.
18일 오전, 전라고 이세종 열사 추모비 앞에서 열린 추모식. 모교 후배가 추모시를 읽고 있다. (사진=송승민 기자)
이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한 조씨는 이 열사를 '가장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조씨는 "삼엄한 시기에 이름도 밝히지 못했으며 이 열사와는 대화도 한번 없이 얼굴만 알고 지냈다"면서도 "이 열사는 수많은 대학생이 거리에 나와 있을 때 가장 앞자리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세종 열사는 계엄군의 진입에 학우들을 모으기 위해 학생회관의 각 방을 다니다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열사는 신군부에 의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수모를 당해야 했다.
전북대 민주광장에는 1985년 5월 18일 '고 리세종 열사 추모비'가 세워지지만, 신군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비석을 뽑아 숨기고 학생들과 추모비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열사는 또 1998년 10월 숨진 지 19년이 지나서야 5·18 첫 희생자로 인정받아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