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방랑자'를 오는 5월 8일 발매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제공)
조성진이 오는 5월 8일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돌아온다. 세계 3대 콩쿠르라고 불리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2015년 이후 그는 클래식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쇼팽(2016), 드뷔시(2017), 모차르트(2018)까지 매 앨범 큰 반향을 일으킨 조성진은 뉴욕 카네기 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베를린 캄머 홀, LA 월트디즈니 홀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활동했다.
'방랑자'란 새 앨범명은 언제나 '이동'해야 하는 조성진의 삶과 닮았다. 다소 우울한 정서이지만 가장 화려한 작품으로 꼽히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힘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S.178', 두 작품을 잇는 곡으로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Op.1'을 선택해 자신만의 해석이 들어간 연주를 들려준다. 슈베르트 5곡, 베르크 1곡, 리스트 4곡까지 총 10곡으로 가득 찬 앨범의 선곡 역시 조성진이 직접 했다.
코로나19로 대면 인터뷰가 어려운 만큼, 조성진은 서면으로 취재진과 만났다. 사전에 수집한 40여 개 매체의 질문 중 가장 자주 나왔던 것 중심으로 구성한 질문지에 따라, 조성진이 답을 보내왔다. 그의 답변을 최대한 손상 없이 전하기 위해 질문과 답변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옮긴다. 인터뷰는 두 편으로 나뉘어 나간다.
다음은 조성진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 슈베르트, 베르크, 리스트까지 레퍼토리가 정교합니다. 모두 직접 선곡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같은 구성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나 이유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일단 세 곡은 공통점이 있는 게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이 되어있는, 악장마다 쉬지 않고, 그래서 한 악장 소나타처럼 들리는 그런 공통점이 있어요. 리스트 소나타도 마찬가지고, 베르크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긴 하지만 몇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곡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랑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슈베르트 방랑자 2악장 때문인데, 그게 방랑자 가곡의 주제를 따와서 '방랑자'가 됐어요. 방랑이라는 게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것 같아요.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사람의 삶도 여기저기서 살았고(물론 말년에는 한 곳에 머물렀지만) 여행도 많이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술가, 보통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점이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해서 그렇게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작년 6월에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녹음했었고, 작년 10월에 함부르크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을 했었어요. 리스트 소나타는 사실 30분짜리 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치는 게 너무 어려운 곡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녹음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부분 부분 나누지 않고 한 번에 하는 게) 더 흐름이 좋다고 생각을 해서, 그래서 최대한 라이브처럼 들리게 녹음을 하려고 했어요.
▶ 지난 쇼팽 녹음에선 수많은 테이크를 녹음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어진 것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녹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6월 베를린에서 녹음을 했을 때 녹음을 다 마치고 관객을 20~30명 불러서 연주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쳤었거든요. (그게 방랑자 환상곡 뮤직비디오의 장면인데) 사실은 그 테이크를 썼어요. 녹음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 들어보니까 관객들 앞에서 친 그 테이크가 가장 저한테는 괜찮게 들려서, 그 테이크를 베이스로 썼습니다. 베르크 소나타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테이크를 썼어요. 리스트 소나타는 그때는 관객이 없어서 프로듀서를 내려 오라고해서 2~3명을 내려오라고 해서 그 앞에서 연주를 했어요. 리스트도 이 테이크를 썼어요. 참고로 리스트는 이게 마지막 테이크는 아니지만요.
조성진은 '방랑자' 앨범에서 슈베르트와 리스트의 곡을 연주하고, 이 두 곡을 잇는 곡으로 베르크를 선택했다. 앨범에 실린 10곡 모두 조성진이 직접 골랐다. (사진=유니버설뮤직 제공)
▶ 관객이 있을 때 더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오는 이유가 있을까요?레코딩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아티스트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말 레코딩 아티스트요. 글렌 굴드 같은 아티스트. 아니면 제가 최근에 비킹구르 올라프손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바흐 앨범을 들었는데 정말 굉장한 앨범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레코딩 아티스트는 저와는 다르게 관객이 없어도 완벽한 음악,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관객이 있는 게 조금 더 편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주는 것 같고. 저는 콘서트 연주회 하듯이 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 전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방랑의 고독함인가요, 아니면 자유로움인가요? 슈베르트의 방랑과 조성진의 방랑을 비교한다면요? 성진씨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랑'의 개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웃음) 슈베르트와 저를 비교하기란 무리가 있을 것 같지만… 제가 파리로 유학을 2012년에 갔었는데요, 한국에서 살다가 파리로 갔을 때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구요.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을 가면 거기가 또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기도 하고. 어디가 진짜 집인지 잘 못 느꼈어요. 그런데 콩쿠르 하고, 베를린으로 이사 오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베를린에 1년에 넉 달 정도 있더라구요. 그렇게 많이 있는 건 아니라서 항상 돌아다니는 게 제 직업이니까, 연주를 하는 게. 하지만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인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오면 또 편해서 집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원래 외동 아들이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있는 걸)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른 뮤지션) 많이 만나니까 연주를 하러 다니면… 그래서 저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테크닉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익히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요? 이 곡을 조성진만의 연주로 표현하기 위해 감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어떤 점에 주안을 뒀는지 궁금합니다.
이 곡의 가장 어려운 점은… 테크닉이 어렵지만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에서는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는 점은 사실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어려움을 표 안 내면서 음악이 먼저 들리게 하려면 일단 테크닉적으로 우선 편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지는 게 있더라구요. 그리고 이 곡은 또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곡인데, 악장마다 캐릭터도 다르고. 그런 것도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계속되어, 조성진의 새 앨범 발매 기념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제공)
▶ 성진 씨가 앞서 인터뷰에서 "본 곡의 기술적인 어려움보다 그가 곡에 담아낸 상상력과 구조성, 진보성에 초점을 둔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환상곡의 구조성과 진보성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보통 소나타 같은 경우는 1악장과 2악장 간에 쉬잖아요? 그런데 악장 간의 쉼 없이 한 악장처럼 만들었다는 그 진보적인 마인드. 그리고 저는 그게 또 하나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리스트가 자신의 소나타도 그렇게(악장 간 쉼 없이) 작곡을 했다고 생각해요. 방랑자 환상곡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믿고 있고 리스트가 실제로 방랑자 환상곡 작품을 좋아해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만들기도 했죠. 리스트가 방랑자 환상곡을 좋아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슈베르트 시대에는 흔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점이라는 것. 이게 1882년도에 작곡이 됐는데 그 당시에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베토벤도 물론 아이디어도 많고 진보적인 작곡가였고 슈베르트는 그런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둘이 통하는 무언가도 있었던 것 같아요.
▶ '방랑자 환상곡'은 옛 대가들의 명반이 많습니다. 이 명반들의 숲에 자신의 것을 내놓으면서 조성진의 유니크함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 있나요?(웃음) 저는 이런 거는 평상시에는 생각을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까 라는 생각을 하면 더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억지스럽고.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제가 생각한대로 치고 이런 게 오히려 제일 개성 있는 연주가 되지 않을까? 사람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치는 것도 다 다르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칠까 이런 생각 말고 그냥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 현재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생활하는 도시의 분위기나 기운이 본인의 연주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베를린은 굉장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을 만날 기회도 있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적인 것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고. 외국인도 많고. 다른 독일 도시와 다르게 활기찬 느낌도 있고. 제 음악적인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 오면 편한 느낌은 있어요. <계속>
※ 인터뷰 2편은 15일 (수) 오전 7시에 공개됩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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