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의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여성과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변호인 조력 없이 나홀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그의 '변론전략'에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팀장 유현정 부장검사)는 26~27일 이틀 연속 조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변호인 참여 없이 검찰 조사에 성실히 답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 혐의에 대해 자기주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씨 앞으로 적용된 혐의는 총 12개에 달한다.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 법률위반(음란물제작 및 배포·유사성행위·강간)·강제추행·강요·협박·살인음모·사기 등이다.
경찰이 넘긴 수사기록도 방대하다. 별책 포함 책 38권의 양으로 약 1만2000쪽 분량에 달한다.
그럼에도 조씨가 피의자로서 택할 수 있는 권리인 변호인 조력권과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변론에 나서면서 조씨가 자포자기한 게 아니냐는 의견과 치밀한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갈린다.
지난해 자녀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묵비권과 변호인 조력권을 충분히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 전 장관 측은 검찰 기소에 대해 "일방적"라며 적극적으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를 두고 검찰에 진술을 제공해 불필요한 빌미를 제공하기보단 검찰의 증거기록을 검토한 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전략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이른바 '사법농단' 핵심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검찰 조사 때마다 진술을 거부하고 재판에서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섰다.
조 전 장관과 임 전 차장 모두 변호인을 선임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충분한 조력권도 행사했다.
반면 조씨는 이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면서, 일각에선 조씨가 관련 혐의 전반을 인정하고 죗값을 받겠다는 태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사실상 온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일종의 전의(戰意)를 상실했을 수 있다"며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조씨는 서울종로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당시 유치장에서 자해소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볼펜을 삼키거나 유치장 내 세면대에 머리르 들이받는 등의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씨가 검찰에 송치되기 전 포토라인에 서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점을 들어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겠다는 취지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조씨가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유리한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선 경찰과 검찰이 확보한 방대한 조씨의 범행 증거자료에 주목한다. 총 1만2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조씨 범행을 입증하는 증거가 상당한만큼 섣부르게 부인 전략에 나설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윈앤윈 장윤미 변호사는 "가상화폐 거래 흔적이나 텔레그램 디록 등 물증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를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차분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공범들로부터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선 조씨도 입을 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검찰 고위직 출신 A변호사도 "텔레그램 방에 함께 있던 공범들의 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각종 자료가 나와있는 상황에서 공범들이 자기만 지목한다면 오히려 묵비권을 행사하는게 안좋게 작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