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 데 대해 경악을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3일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담화를 마치며 한 말이다.
북한의 군사훈련에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를 "겁을 먹은 개"에 비유하며 비난한 대목으로 보이는데, 김여정 제1부부장의 정치적 위상과 화법, 감정의 표출 방식, 스타일 등이 잘 표현됐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지금까지 북한에서 나온 공식 담화 중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평가된다. 화법과 형식 등이 과거의 그 어느 담화와도 다른 차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답게 표현에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는 만큼 비난에도 다양한 감정을 실었다.
청와대를 향해 "남의 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대해 가타부타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기분이 몹시 상하겠지만 우리 보기에는 사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안는다"라고 조롱하기도 하며, "내뱉는 한마디 한 마디, 하는 짓거리 하나 하나가 다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바보스러울가"라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몰래몰래 끌어다놓는 첨단전투기들이 어느 때든 우리를 치자는데 목적이 있겠지 그것들로 농약이나 뿌리자고 끌어들여왔겠는가"라며 농 섞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공식 담화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1인칭도 쓴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 군사 장비를 사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 보기 싫은 놀음은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침없는 직설적 표현과 1인칭의 사용 등은 백두혈통 김여정 제1부부장의 정치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여정은 지난해 연말 당 전원회의 즈음에 이미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임에도 불구하고 당 제1부부장으로 호명됐다. 선전선동부를 넘어서는 당내 권력 핵심부서 조직지도부로 전보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조직지도부는 당 간부의 인사와 감찰을 총괄하는 핵심 부서인데, 최근 리만건 조직지도부장이 공개 해임된 만큼, 김 제1부부장이 부서 내에서 사실상 '수장'의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 제1부부장이 이번에 자신의 이름으로 청와대 비난 담화를 내는 등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그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최근 리만건 당 조직지도부장의 해임으로 김 제1부부장이 최고 실세로 부각돼, 대남 관계에서도 총괄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외교 안보 부서의 전직 고위 관료도 "김여정이 전면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번 담화로 북한 내 2인자라는 것까지 보여줬다"며,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동통치 관계처럼 두 사람은 앞으로 비슷한 구도로 흘러갈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즈음에 대남특사로 활동한데 이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도 배석해 문 대통령 역시 잘 아는 권력 2인자 김여정을 내세워 청와대를 향한 불만 표출의 강도를 배가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를 분리 접근한다는 점이다.
담화는 북한의 군사훈련에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를 향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으나 문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판은 피했다. 아울러 한미연합훈련 취소의 배경을 비난하면서도 문 대통령으로 특정하지 않고 "청와대 주인들"이라는 통칭을 썼다.
김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분리하는 데는 먼저 "청와대를 향해 경고는 하되 파국으로까지는 원치 않는다는 북한의 상황관리 의도를 내포 한다"는 의견이 있다. 향후 남북관계가 더 경색될 가능성이 높지만 문 대통령이라는 마지막 문은 닫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더 나아가 현재 남북 간에 다양한 현안을 두고 물밑 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의 전향적인 양보와 조건수용을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해석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비난 담화를 내놓지 않은 것은 우리 측에서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추측 된다"며, "만약 문 대통령이 북한의 화력전투훈련에 대해 강한 유감이나, 중단요구를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김정은이 직접 비난에 나섰을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4일 정례 브리핑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와 관련하여 현재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좀 더 시간을 갖고 분석한 뒤에 말 하겠다"는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담화의 표현이 매우 거칠지만 내용적으로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이 아니라 북한의 군사 훈련에 대한 남측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군사 도발의 메시지도 없는 만큼, 담화의 '속뜻'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흘러나온다.
앞으로 현실화될 속뜻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