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농협 하나로마트 삼송점에서 '마스크 판매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을 내걸었지만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사진=박하얀 기자)
"아침 8시 반에 왔는데 순번이 163번입니다. 5시간 넘게 밥도 못 먹었어요, 마스크 때문에"마스크를 사느라 굶고, 마스크 때문에 곳곳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정부가 2일 농협 하나로마트, 약국, 우체국 등 공적 판매처를 통해 마스크 약 588만장을 공급한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하나같이 마스크 구매하기가 여전히 '하늘에 별 따기'라고 했다.
2일 CBS 노컷뉴스 취재진이 마스크 공적 판매가 본격화된 서울·경기 일대 농협 하나로마트와 약국 등 공적 판매처를 돌아봤다. 현장은 '마스크 전쟁'을 방불케 했다.
경기도 고양시 농협 하나로마트 삼송점 앞. 사람 수백명이 500m 넘게 줄지어 서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이곳에서 마스크를 한 사람당 5장씩 살 수 있다는 소식에 찾아온 이들이다.
사람들은 감염될까 하는 걱정에 마스크로 얼굴을 감췄다. 60대 이상 노인들이 많았다. 박스를 접어 그 위에 쭈구려 앉거나 아예 맨 바닥에 주저 앉은 이들도 여럿 보였다. 주부들이나 가족 단위 시민들도 있었다.
판매는 오후 2시에 시작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사람들이 100명 넘게 있었다. 지모(78)씨는 오전 8시 30분에 도착했지만 그가 받은 번호표 순번은 163번이다. 지씨는 "도착했을 때 이미 수십명이 서 있었다"며 "몇 시간째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다, 힘들다"고 토로했다.
2일 오후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농협 하나로마트 삼송점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박하얀 기자)
이날 해당 마트가 준비한 마스크는 3천개. 600명에게만 주어지는 물량이다.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번호표를 나눠줬고 간발의 차이로 늦어 번호표를 받지 못한 수십명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계속해서 농협 직원을 향해 항의했다. 시민들은 "오늘 못 샀으니 내일 살 수 있도록 번호표라도 달라"고 요구했고, 매장 측에서는 "내일 들어올 물량이 확실치 않아서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민들은 "이럴 거면 2시부터 판매한다는 공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 "600인분 분량인 것을 왜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느냐"며 마트 관계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휴가까지 내고 왔는데 어제부터 바람을 맞히냐"며 직원에게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
번호표 지급, 질서 정돈 등에 불만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하나로마트 서울 서대문점을 찾은 이모(66)씨는 "가격은 둘째 치고 체계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이라 화가난다"며 "오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이 항의하자 12시가 넘어서야 번호표를 줬다"고 말했다.
마트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이날 서대문점 판매 가격은 장당 1730원, 삼송점은 1200원이었다.
하나로마트 삼송지점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온라인에 얼마에, 몇 명 분량을 판매하는지는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다"며 "수급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아 우리도 난처하다"고 말했다.
2일 오후 하나로마트 서대문점에 '마스크 정부 공적 물량 소진 완료'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사진=서민선 기자)
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품절'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박하얀 기자)
약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취재진이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 일대 약국들을 돌아본 결과 여전히 마스크 구하기는 어려웠다.
약국마다 확보한 마스크 물량은 50개부터 150~200개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었다. 약사회가 있는 고양시는 1인당 2매로 한정해 마스크를 팔고 구매 시 장부에 이름을 적고 서명하도록 했다. 서울시 약국도 물량이 부족해 대부분 1인 2매로 한정해 판매하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약국은 이날 오전 9시에 마스크 100개 판매를 시작했는데 30분만에 동이 났다. 인근의 약국 2곳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있냐"며 찾아온 시민들은 허탈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한 약국에서는 "왜 2개밖에 안 파냐"며 약사와 손님 간에 실랑이도 벌어졌다. 손님이 근처 약국과 비교하자 약사는 "두 곳에서 중복으로 사신 거냐, 그러지 못하도록 장부를 쓰게 하는 것"이라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아직 공적 판매처로 지정되지 않은 편의점을 찾는 발길도 이어졌다. 한 편의점 직원은 취재진에게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주문하는 대로 물량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2번만 들어온다"며 "한 번에 입고되는 물량도 5-10장뿐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문의한다"고 설명했다.
전국 읍면 소재 우체국에서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지만 해당되지 않는 지역의 우체국을 찾는 등 헛걸음한 시민들도 있었다.
현재 판매 방식이 실효성이 떨어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 약사는 "현재 정부가 지정한 업체를 제외하곤 다른 도매상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어서 수급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약사 심모(45)씨도 "시간 여유가 되는 사람만 계속 구매하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주부 오모(41)씨는 "노약자나 직장인들은 구매하기 쉽지 않은데 동 주민센터에서 가구마다 공평하게 마스크를 배급하는 등의 방식을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2일 오후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농협 하나로마트 서대문점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서민선 기자)
2일 오전 8시 30분쯤 경기도 고양시 농협 하나로마트 삼송점을 찾은 남성이 163번 번호표를 손에 쥐고 대기하고 있다. (사진=박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