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 어선 해상시위 (자료사진=연합뉴스)
"만약 광주 치안을 군부대가 수행한다고 하면 광주시민들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서해5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 정부가 군사 통제와 형사처벌까지 한다는데 어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정부가 올해 8월 28일부터 시행하는 어선안전조업법(이하 어선법)을 두고 서해5도 어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군이 어민들을 통제하고 위반시 형사처벌까지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서해5도 평화운동본부 등 서해5도 지역 15개 어민단체들은 26일 "우리를 군사 통제 대상이자 형사처벌 대상자로 인식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 항의한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을 내 “엄혹한 군사정권에서도 모법을 만들어 조업 통제를 군이 할 수 있도록 규정하거나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명문화한 적은 없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 ‘군의 어민 통제·형사처벌 명문화’…문제 외면한 지자체와 정치권이들이 개정된 어선법에서 반발하는 이유는 어민들의 조업활동을 군 당국이 통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년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어선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맞닿은 접경지역 인근 어장은 관할 군부대장이 통제하고,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당초 시행규칙에 있던 군부대가 어선 출·입항 신고를 관리한다는 규정을 법으로 명문화하고, 해양경찰과 지방정부가 했던 정선(배를 세우는) 명령 권한을 국방부에게도 부여했다. 군부대가 민간인들인 어민을 통제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셈이다.
무엇보다 어선법에서 위반시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적용되는 지역은 전국에서 서해5도가 유일하다.
이들은 “지금까지 안보를 이유로 다른 어민들처럼 24시간 조업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고, 섬 주변 어장에서만 조업하도록 통제 받았다”며 “수십년간 중국어선의 노략질에 재산권도 침탈당하면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참고 살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들은 “(어선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인천시와 옹진군을 비롯한 지역 여·야 국회의원 모두 이에 대한 불합리나 불공평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서해5도의 안보와 평화를 위한다며 뻔뻔하게 표를 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선착순달리기·쪼인트까기’ 50∼60년대 서글펐던 ‘군 통제의 기억’어민들이 개정된 어선법에 강력 반발하는 데는 정부의 서해5도에 대한 차별적 대우뿐만 아니라 과거 군의 반인권적인 군사 통제 경험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민들에 따르면 1950∼1960년대 서해5도에 주둔했던 우리 군은 어민들에게 반인권적인 체벌을 자행했다. 어선의 출·입항 지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노인 어부에게 어깨에 노를 메고 산봉우리까지 뜀박질을 시켜 벌을 주거나, 조업구역을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군화발로 구타하는 이른바 ‘쪼인트까기’ 등의 체벌을 가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정부 정책에 불만을 나타냈다가는 간첩으로 몰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 지내왔다고 어민들은 주장했다.
어민들은 이 시기에도 군이 어민들을 통제한다고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는데 ‘평화가 경제’라고 표방한 현 정부가 이를 법으로 제정한 데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우리의 바다가 안보와 평화를 명분으로 정쟁이나 상징성을 다투는 ‘정치적 공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법에 동조하거나 방관한 여당 의원과 정부 관료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 “야간조업 금지하면서 등대는 왜 켰나…24시간 조업 허용해야”어민들이 개정된 어선법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형사처벌 조항 삭제 △시행령 제정 시 어민의견 수렴 △조업통제권 해경 일원화 △서해5도 24시간 야간조업 허용 및 어장 확장 △서해5도 민관협의체 개최 등이다.
이들은 인권을 제약하는 규정을 제정하면서 당사자인 어민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시행 6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시행령 초안도 마련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반드시 ‘어민’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을 호소했다.
이를 위해 주관부서인 해수부가 정부와 어민들이 머리를 맞대는 ‘서해5도 민관협의체’를 다시 열어 줄 것을 제안했다.
또 여전히 야간조업을 할 수 없음에도 정부가 연평도와 백령도의 등대를 켠 것을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고 차라리 24시간 조업을 허용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어민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대안없이 법을 강행할 경우 ‘상식과 인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들과 연대해 결사투쟁하겠다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