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중국 후베이성 외국인 입국제한조치를 밝히는 모습(왼쪽), 외국인 입국심사 모습(사진=연합뉴스)
정부가 4일 0시부터 중국 후베이(湖北)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한국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우한 폐렴)'의 국내 전파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방역 대책으로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는 '무증상 감염' 가능성이 현실화 된 것도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정세균 총리 "지역사회 전파 우려 커져, 입국 제한"청와대와 총리실 등은 중국 우한에 체류하던 우리 교민과 유학생들이 이송작전이 시작된 지난달 30일을 전후로 중국 체류 외국인의 입국 제한 조치를 본격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한중 외교 관계와 '중국 여행·교역 제한 조치 불필요'라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가 나오면서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입국 제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국내 3차 감염자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신종 코로나 전파 속도가 심상찮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대응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내에서도 중국을 다녀오지 않은 분들에 대한 감염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지역 사회 전파가 우려되고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중국 위험 지역에서의 입국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4일 0시부터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며 "우리 국민의 경우 입국 후 14일간 자가격리하겠다. 제주 특별자치도와 협의 하에 제주특별법에 따른 무사증 입국 제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2일 오후 5시(현지시간)부터 최근 2주간 중국을 다녀온 외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입국을 잠정 금지하기로 결정하고, 일본도 2주간 후베이성에 체류한 적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중국 체류 외국인의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는 것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와 이탈리아, 이스라엘, 체코, 베트남도 중국을 다녀온 이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거나, 중국발 항공기의 자국 착륙 금지,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일시 중단 조치 등을 실시 중이다.
WHO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적인 여행과 교역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조처가 있을 이유가 없다"가 밝혔지만, 주요국들이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합법적 방식으로 입국 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 상대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와 인적 교류 규모 등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우한 교민들이 국내로 이송되기 직전부터 내부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다"며 "신종 코로나 전파 속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와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감염병 전문가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문 대통령, 감염병 전문가 靑 초청 간담회문재인 대통령이 2일 전문가 집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감염병 전문가 간담회'를 진행한 것도 국내 전파 속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 필요성을 자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간담회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오늘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청와대에서 방역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방지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참석한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엄중식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 최보율 한양대 예방의학 교수, 김홍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등은 문 대통령에게 "국내 유입 환자수를 줄여 국내 의료 역량이 감당 가능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우선 순위를 국민안전에 두고 이번 사태에 대처해 나가야한다.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민간과 공공기관간 협력에도 힘을 모아달라"며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해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박능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관계부처 실·국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박능후 복지부장관 "무증상, 경증 환자에서 감염 전파 나타나"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겸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은 2일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신종 코로나는 무증상, 경증 환자에서 감염증이 전파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는 신종 코로나의 '무증상 감염' 가능성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의 무증상 전파 가능성이 커지고 일반 호흡기감염과 증상만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번 입국 제한 조치에 영향을 줬다.
특히 2일 기준으로 국내 확진자가 15명으로 늘어나는 등 국내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3차 감염 확진자가 나온 것도 더욱 강력한 방역과 예방 대책을 요구하게 됐는 분석이다.
앞서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오전 우한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3명 추가됐다고 밝혔다.
13번째 확진자(28·남)는 지난달 31일 1차로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 중 한 명이며, 14번째 확진자(40·중국인 여성)는 12번째 확진자(49·중국인 남성)와 접촉했다가 자가 격리 중이었다. 15번째 확진자(43·남)는 한국인이지만 지난달 20일 우한시에서 입국해 능동감시 대상이었다.
추가 확진자가 중국 우한 지역을 직접 방문했거나, 중국인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강력한 추가 대책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가 종료되는 2일 이후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중국인들이 도시로 복귀하고 이들 중 일부가 국내 근로자로 입국할 경우, 방역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 총리는 "지역 사회 내 바이러스 확산될 수 있는 경로를 더 촘촘히 차단해야 한다"며 "사업장과 어린이집, 산후조리원 등 집단시설 근무자들이 중국 다녀온 경우 14일간 업무 배제 조치도 취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 유학생과 기업인들은 방역 관리 통계에 잡히지만, 중국인 가사도우미와 일용직 근로자 등은 통계에 쉽게 잡히지 않아 방역 체계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박능후 장관과 관계부처 실·국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이날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오늘 발표된 대책과 관련해 지금 상황에서 한중 양국 정부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전혀 마찰이 없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또 "정부 조치에 대해서는 수시로 중국 측에 설명하고 통보를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1일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주한 중국 대사는 차이나랩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은 국제 사회와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여행·교역 제한을 반대한다는 WHO 규정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 장관이 이날 중국과의 마찰이 없다고 밝힌 것은 사드 배치 이후 냉랭해졌다가 최근 회복 단계에 들어선 한중 관계가 이번 '중국 후베이 지역 체류 외국인 입국 제한 조치'로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