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의 모습. 김명지 기자
'적정 주거'에서 내몰린 360여 명의 거처, 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이 당국의 정비 계획에 따라 50년 역사를 뒤로 한 채 사라질 예정이다.
앞선 개발 시도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던 주민들의 이주 문제를 '선(先)이주 대책'으로 우선 해결한다는 점 등은 고무적이지만, 주민들은 아직 '싱숭생숭'하다. 쪽방촌의 일부 장점도 조명하면서 몇몇 시설은 개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쪽방 주민 껴안는 주택 1200호 공급 계획…주민들 "걱정 앞서기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영등포구는 지난달 20일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및 도시 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쪽방촌 일대 1만㎡를 2개 블록으로 나눠 '복합시설 1' 블록에는 쪽방 주민들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370호와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을 위한 행복주택 220호를, '복합시설 2' 블록에는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분양주택 600호를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강남보다 비싼' 10~20만 원의 평당 임대료를 치르면서도 열악한 위생‧난방 등은 물론 우울증과 고독사 등이 횡행한 사정에 시달려온 쪽방 주민들이지만, 당장은 뒤숭숭한 심정이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9년을 살았다는 김종학(53) 씨는 "이미 숱하게 나왔던 얘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생활환경이 바뀐다 하니 아무래도 불안하지만, 음주자들 소란 때문에 질린 일이 많아서 개발이 이뤄진다고 하면 이참에 아예 다른 곳으로 떠날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3년째 이곳 주민이라는 박모(61) 씨 역시 "마음이 뒤숭숭하다"며 "진작부터 얘기는 나왔는데, 실제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는 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토부 등은 쪽방촌 정비사업에서 번번이 암초가 됐던 주민 이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한 상태다. 지구 내 오른편에 '선(先)이주 단지'를 만들어 사업 기간 중 쪽방 주민이 임시 거주하도록 하고, 이후 임대주택 입주가 완료되면 철거해 민간에 분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대적인 발표에도 주민들은 아직 "온전히 믿고 따르기 어렵다"는 반응인 것이다.
달라진 환경에서의 단절된 삶의 모습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주민 윤정희(66) 씨는 "우리는 고독사가 무서운 사람들"이라며 "여기서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얘기도 하고, 자주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면 집에도 가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알려지는 식인데 앞으로는 그런 게 안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영구임대아파트도 임대주택인데, 까다로운 입주 과정과 조건을 '일자무식'인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할까 싶다"며 "이런저런 문제로 사람들이 '슬럼프' 상태"라고 덧붙였다.
◇ "진전된 개발 계획, 우려 딛고 다른 쪽방들로도 이어져야"
물론 공공주택특별법에 근거한 이번 계획은 사실상 최초로 '쪽방 주민을 내쫓지 않는 쪽방 개발'이라는 점에서 유례없이 진전된 사업이다.
개발 후 밀려난 쪽방 주민이 다른 쪽방으로 수평 이동 내지는 아예 거리로 내몰리던 이전의 방식에서 나아가 '선이주 대책'에 이은 '영구임대주택' 제공은 물론 각종 복지‧보조시설들이 승계되거나 추가된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 '홈리스행동'도 "철저한 '축출의 역사'였던 그간의 쪽방 개발이 주민 재정착으로 이어지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해당 계획을 환영하며 이것이 모든 쪽방 지역 개발의 원칙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관련 토지이용구상안(출처=국토교통부)
다만, 단기 거주자들을 위한 '쪽방의 순기능'은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국이 쪽방 주민을 들이겠다는 영구임대주택은 '노숙인 등의 임시 거주지'로서의 쪽방 기능을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노숙인복지법상 임시주거비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에서만 한 해 250명가량의 노숙인이 쪽방에 들어가 산다"며 "주거비는 지원되는데 공급은 쪽방과 고시원, 여관 등 민간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주거복지 차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성'으로 말미암아 계약 기간 등이 다소 경직된 영구임대주택이 이 모든 수요를 감당하게 두기보다는 과도기적 '발판 주거지'로서 역할을 할 임시주거지를 이참에 추가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의 위생과 관리 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무료급식소는 그대로 승계하기보단 개선하고, 노숙인을 '수용자'로 취급하는 자활시설은 아예 없앨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 기준 서울시의 '쪽방 밀집 지역 건물 실태 및 거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내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서울역, 영등포 5개 지역 쪽방촌에서는 3981개의 쪽방 건물에 3296명의 주민이 살아간다.
월 100만 원 미만의 소득을 얻는 거주민은 응답자 가운데 74.4%를 차지하는데, 기본적인 생활시설조차 편히 활용할 수 없다. 취사장이 있는 주택은 전체의 24.8%인 78곳에 불과했고, 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까운 공공건물'이나 '쪽방 상담소'라고 답한 비율은 23.4%, 주 사용 세면장이 '쪽방 건물 밖'이라고 답한 경우도 29.2%에 달했다. '장애가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도 29.7%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마저 내몰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서울시 중구의 남대문5가 쪽방촌이 포함된 '양동 재개발구역 정비계획'은 지난달 16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고시됐다. 이곳에 거주 중인 250여 명이 쪽방 주민들은 정비지구는 물론 관리지구에서도 설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민간이 수립하는 사업 계획 제안에 쪽방촌 세입자들을 위한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영등포 개발 모델'이 단점을 개선하고 쪽방촌 주민을 위한 개발의 첫 사례로 자리 잡아 다른 쪽방촌으로도 확장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