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산불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11살 어린이가 보트의 조종간을 쥐고있는 사진이 호주 일간지 표지를 장식했다. (사진=The Daily Telegraph(좌), The West Australian(우) 캡처)
강풍과 고온, 가뭄을 동반한 사상 최악의 산불로 지구 남반구 호주 남동부 지역이 두 달 가까이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즈주 정부는 3일부터 일주일 간 국가비상사태를 발동했다.
7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재난을 당한 연말 보다 심각한, 총 14명이 숨진 이번 장기 산불국면 중 최악의 상황이 닥쳐올 수 있다고 본 때문이다.
특히 4일 기온이 40도가 넘을 걸로 예보돼 이번 호주 산불 사태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번 호주 산불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호주 시민들의 처지가 몇 장의 사진들에 잘 나타나 있다.
사진=가족 제공
위 사진은 빅토리아주 말라쿠타 지역 화염에 휩싸여 모든 주민들에 소개령이 내려진 31일 모리슨씨 가족이 집을 탈출해 나올 때 찍힌 것이다.
엄마 앨리슨이 두 아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부랴부랴 피난길에 올랐을 때 11살밖에 안 된 아들 핀이 보트의 조종간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아들은 강아지를 보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다음 날 지역 일간지 표지를 장식하며 호주 국민들로부터 큰 공감을 샀다.(사진 위)
(사진= 'travelling_aus_family'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위 사진은 같은 날 말라쿠타 지역 시민들이 탈출을 위해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듯 선착장에 홀로 켜진 등불이 마치 풍전등화처럼 느껴진다.
담요를 두르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주민들과 아무렇게나 바닥에 엎드려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애처롭다.
(사진= 'andrewflaxman' 인스타그램 계정 캡처)
위 사진은 같은 날 뉴사우스웨일즈의 콘졸라 호수 인근 주민들의 대피 때 모습이다.
승선 정원이 6명인 이 작은 보트에 14명의 사람과 2마리의 개가 승선해 있다.
더 뭉클한 것은 이 보트의 주인에 관한 이야기다.
브렛 크립스(50) 씨는 불길이 거세지고 있을 때 호수 주변에 모여 있던 여행객들이 마땅히 피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자신의 집도 갑작스럽게 불길에 휩싸이던 순간이지만 크립스씨는 중요물품을 챙겨 나오는 대신 보트에 시동을 걸었다.
여행객들을 우선 대피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때문이다.
그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여행객들을 향해 "빨리요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며 소리치며 배에 이들을 태웠다.
이 배에 올라탄 14명 가운데는 가족들과 함께 5주간의 연말 휴가를 이 곳에서 보내기 위해 온 3~10세 사이의 어린이도 7명이나 됐다.
이 배에 탄 질리 플랙스만씨는 호주 ABC와의 인터뷰에서 "갑작스런 불길에 시야가 확보가 안 돼 차를 타고 대피할 수도 없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며 "크립스 씨가 아니었다면 6명의 가족이 큰일을 겪을 뻔 했다"고 말했다.
한편, 3일부터 일주일간 발령된 국가비상사태 기간엔 주민 강재 소개령이 발령되고 도로도 봉쇄된다.
충청도 크기의 남동부 관광지에선 관광객 대피령도 내려졌다.
호주 정부는 산불 대응에 군사력까지 동원하고 있다. 해군 함정들은 해안가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연말이면 강도가 세지는 산불에 호주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는 건데, 역대급 가뭄과 혹서기로 인한 피해 말고도 그로 인한 사회갈등도 큰 비용이다.
인접국인 뉴질랜드도 비상이다.
뿌연 재 때문에 관광과 보건에도 피해가 생길 뿐 아니라 뉴질랜드 남섬의 국립공원 빙하들도 녹아내릴 위기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