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케냐 지라니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임하고 있다. (사진=CBS 제공)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32명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나의 천사'라는 뜻의 '말라이카'(Malaika), '이리 와'라는 의미를 지닌 '장갈레와'(Zangalewa)까지, 그들이 깨끗한 미성으로 아프리카 민요 두 곡을 연달아 부르는 동안 1천여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커다란 박수 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화답했다.
15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케냐 지라니합창단 크리스마스 콘서트는 국경과 인종, 세대 등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말 그대로 화합의 장이었다.
이날 공연은 CBS가 창사 65주년을 기념해 지라니합창단을 초청하면서 이뤄졌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일요일 저녁 가족·친구·연인 단위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현장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두 차례 앵콜 요청 박수로 지라니합창단의 발길을 붙잡았다.
합창단 역시 '선샤인 인 마이 소울(Sunshine in my soul), 종이비행기 노래 '우리들의 겨울', 공연 초반 불렀던 '잠보'(Jambo·케냐 말로 '안녕'이란 의미)의 새로운 편곡 버전까지 3곡을 불러 앵콜 요청에 부응했다.
지난 2005년 케냐에서 빈민구호 활동을 하던 한 선교사의 제안으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린 지라니합창단. 이곳 단원들은 현지 빈민가 아이들이다. '지라니'(JIRANI)는 케냐 말로 '좋은 이웃'이란다. 이 합창단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노래를 바탕으로 서로를 돌보며 희망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라니합창단 공연은 영화 '라이온킹' 주제가로 유명한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와 '타이타닉' 주제가로 익숙한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으로 시작을 알렸다. 이 오프닝은 지라니합창단 없이 5인조 팝페라 그룹 컨템포디보와 비트박서 마이티가 함께했는데, 절묘하게 어우러진 하모니 덕에 이후 펼쳐질 본 공연에 대한 관객들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 무대 떠나는 순간까지 관객들과 교감하려 애쓴 아이들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케냐 지라니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임하고 있다. (사진=CBS 제공)
우리 노래를 지구 반대편에서 온 지라니합창단의 하모니로 듣는 경험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날 합창단은 1부에서만 박학기 노래 '아름다운 세상', 그룹 GOD '촛불하나', 민요 '아리랑'까지 우리 노래 3곡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컨템포디보, 마이티와 협업한 '촛불하나'는 합창단원들과 관객들도 한결 커다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자리였다. '촛불하나'는 이날 처음부터 끝까지 단원들 앞에서 하모니를 조율한 지휘자 없이 이뤄진 유일한 노래였다. 랩 부분이 이어질 때는 4명의 단원들이 차례로 무대 앞에 나와 흥겨운 몸짓을 가미하며 랩을 소화해 관객들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여기에 '실버벨'(Silver Bells), '렛 잇 스노우'(Let it snow), '아프리칸 노엘'(African noel), '징글 벨 록'(Jingle bells rock) 등 다양한 캐럴이 더해지면서 성큼 다가온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젬베 등 아프리카 전통 악기를 활용한 노래들도 흥을 더하게 만든 요소였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앵콜곡까지 모든 노래가 끝나고 합창단원들이 무대를 내려가는 와중에 펼쳐졌다. 차례로 줄을 지어 무대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몇몇 단원들은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커다란 박수와 함성으로 교감을 나눈 관객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무대 뒤로 사라지기를 주저했다.
합창단원들은 관객들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나누고,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등 떠나는 순간까지 관객들과 교감하려 애썼다. 관객들 역시 같은 몸짓으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빈부, 인종, 성별을 떠나 세상 모든 아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날 2시간 동안 지라니합창단과 관객들이 나눈 소통은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케 만드는 여정이었다. 그렇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