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오른쪽) 중기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김주영 위원장과 면담했다.(사진=연합뉴스)
내년부터 50인 이상~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될 예정인 가운데 중소기업계가 제도 시행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서 노사정 갈등이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주 52시간 근로제 중소기업 적용을 두달여 앞둔 지난달 '중소기업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며 1년 이상의 유예를 요구했다.
중기중앙회가 전국의 중소기업 500군데를 조사한 결과 65.8%가 '주52시간제를 여전히 준비하고 있다'거나 '준비할 여건이 안된다'고 응답했다는 것.
중소기업계는 '현장이 준비가 안됐다'며 올들어 부쩍 주52시간제 시행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요구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처음에는 1년 유예에서 지금은 1년 '이상'의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보완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유예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급기야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지난달 30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주 52시간 근로제 유예를 노동계에 요청했다. 앞서 김 회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을 중기중앙회로 초청해 주 52시간 근로제 연기를 읍소하기도 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계도 기간을 갖자는게 아니라 제도 적용을 아예 유예하자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의 이같은 유예 요구에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지난 6일 지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의 이같은 유예 요구에 대해 노동계는 싸늘한 반응을 보내고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을 맞이했던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2015년 노사정이 주 52시간 근로제에 합의했는데 아직도 준비가 부족하다고 하면 1년 지나도 해결될 수 있겠느냐"며 "예정대로 시행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입장은 더욱 완고하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경우 총파업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과로사 비율이 현저히 높은 실정"이라며 "장시간 근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주 52시간제가 차질없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경영계가 요구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현행 최장 3개월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는데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를 6개월 단위로 확대하자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하며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이보다 더 확대해 1년 단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민주노총은 이럴 경우 임금이 연 600만원 줄어들고 장시간 근로가 합법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처리될 경우 '총파업'으로 맞설 것이라며 오는 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계기로 투쟁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계와 노동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곤혹스런 표정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고 정부 출범 이후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노동정책의 양 날개로 삼아 왔다.
하지만 최근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기업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시행해오던 친노동정책이 모두 후퇴하고 있다는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예하기는 어렵고 대신 제도 시행 이후 충분하게 계도 기간을 부여해 중소기업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중소기업계와 노동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