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님은 구두 안닦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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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에서 30년 가까이 구두수선소 운영
월 수입 200만원대 정부청사 임대료 50만원
"임대료 압박에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세청 세종청사 옥외에 위치한 3평 구두수선소 내부(사진=곽인숙 기자)

 

지난달 기자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국세청 세종청사에서 구두수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윤기(52)씨의 전화였다.

김씨는 내년도 임대료 지급을 앞두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거 같다"며 하소연했다.

일단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 싶어 지난 9월말 세종에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28년째 국세청 청사에서 구두닦이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청사에서 국세청 직원들의 구두를 닦다가 지난 2014년 말 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그도 가족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국세청 청사에 있을 때는 건물 지하 한 켠에 작게 자리를 잡고 따로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됐지만 세종시로 오면서 청사 관리가 정부청사관리소로 이관되면서 구두닦이를 계속 하려면 규정상 청사 임대 입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평당 공시지가는 150만원, 국세청 2층 옥외에 가건물로 입주된 공간은 3평이라 연 450만원이 최저입찰가였다.

김씨는 꼭 입찰을 받아야 하기에 두 배 가까이 되는 연 1천백여만원을 입찰가로 써 낙찰받았다.

2년동안 2천2백여만원, 한달에 월 임대료를 1백만원 가까이 내던 김씨는 도저히 감당이 안돼 지난 2017년 계약을 취소하고 다시 입찰해 지금은 1년에 520만원만 내고 있다. 수지가 맞지 않아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세청 세종청사 옥외에 위치한 3평 구두수선소의 연 임대료 영수증(사진=김윤기씨 제공)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정장에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구두닦이가 할 일이 많았지만, 복장 간소화로 캐주얼복을 입는 공무원들이 많아지면서 구두를 신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줄어 오전에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날이 잦다.

한달 수입의 1/4이 월 임대료

한달 수입이 200만원대인데 월임대료 50만원에 전기요금 10만원은 너무 큰 부담이라 정부청사관리소에 3평인 공간을 1평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했지만 규정상 안된다는 대답 뿐이었다.

실제 가보니 국세청 세종청사 2층 옥외에 가건물로 입주해 있는 구두수선소는 한 눈에 봐도 월 임대료 50만원을 내기에는 턱없이 비싸보였다.

김씨는 "처음 입주 당시 옥외라 전기로 들어오지 않아 문의하니 청사관리소에서는 알아서 전기를 끌어다 쓰라고 하더라. 항의하니 그제서야 전기를 연결해줬다"며 "구두를 닦으려면 물로 닦아야 하는데 겨울에는 얼어서 구두를 닦기 조차 힘들었다"면서 "수선소를 실내로 옮겨달라고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또 "이발소나 미용실은 임대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며 "구두수선도 직원 복지상 꼭 필요한 업무인데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청사관리소 관계자는 "이발소, 미용실, 어린이집, 구내식당 등은 관리 위탁 시설이라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며 "이외는 사용허가 시설이라 사용료를 부과받는 것"이라며 "김씨의 경우,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위치를 조정한다던가 등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발소와 미용실 등은 정부청사관리소에서 직접 운영해야 하는데 전문적인 기술이 없다보니 운영하기 어려워 전문가에게 위탁 운영한다는 것이다.

1청사 구두수선소도 비싼 임대료 감당못해 철수

기획재정부 등 대부분의 청사가 입주해있는 정부세종1청사에는 최근 구두수선소가 사라졌다.

비싼 임대료가 감당이 안 돼 계약이 만료되자 철수해 버린 것이다.

현재 정부세종청사 전체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은 김씨가 유일하다.

국세청 세종청사 옥외에 자리잡고 있는 구두수선소(사진=김윤기씨 제공)

 

그래서 1청사에서 택시를 타고 국세청까지 와서 구두를 맡기는 공무원들도 늘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예전보다는 구두를 신는 공무원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장차림의 공무원들이 많다. 특히 장·차관 등 고위직들은 다 구두를 신고 다니는데 내가 일을 그만 두면 세종에 있는 공무원들은 어디서 구두를 닦을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정부에서 일자리 만든다고 하는데 있는 사람이라도 쫓아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도저히 버티기가 힘든데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그게 법이고 규정이라니...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씨는 최근 내년도 임대료 570만원을 냈지만 그 이후에는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세종청사에 단 하나 남은 구두수선소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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