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가 '인천지하상가 관리운영 조례 개정안'을 심의하는 모습 (사진=주영민 기자)
인천시의회가 지하상가의 불법 재임차(전대)와 양도·양수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천시와 지하상가 점주들 간 의견을 조율할 시간을 갖자는 취지지만 실효가 있을지 미지수다.
인천시의회는 지난달 30일 인천시가 상정한 '인천지하도상가 관리 운영 조례 전부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대해 심의한 결과 보류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심의를 맡았던 건설교통위원회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보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개정안은 2002년 6월 이후 조례로 허용해 온 지하상가 점포의 불법 재임차와 양도·양수가 상위법인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을 위배해 이를 금지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는 그동안 행정안전부와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등이 개정을 권고한 사항이다.
시의회가 보류를 결정한 건 불법 재임차를 금지하려는 인천시와 개정안을 저지하려는 지하상가 점주들 간 합의안을 내라는 취지다. 하지만 양측 의견차가 첨예하기 때문에 합의안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쟁점은 재임차 기간이다. 시는 유예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제시했고 점주들은 20년을 요구하고 있다. 인천시와 시의회, 점주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7차례 만나 의견을 나눴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시는 시의회의 중재로 점주들과의 다시 만나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물러서지는 않을 분위기다. 점주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법'대로 집행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점주들과 합의하지 못하거나 조례가 개정되지 않더라도 임차기간이 만료되는 지하상가부터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점주들도 강경한 입장이다. 인천지하도상가연합회 관계자는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재임차 유예기간 20년'을 꼭 사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와 시의회는 다음 회기에는 어떤 식으로라도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낙관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2016년 9월에도 시의회에서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같은 이유로 심의 과정에서 보류했고, 이후 표결에 부쳤지만 결국 부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같은 수순을 밟지 않기 위해는 현재 시의회의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개정안에 대한 당론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7개 시의회 의석 중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34석을 점유하고 있다.
한편 인천지하상가 문제는 인천시가 2002년부터 행정자산인 지하상가 점포를 양도·양수, 재임대(전대)할 수 있도록 조례로 허용하면서 불거졌다.
점포의 재임대를 허용하면서 인천시 소유 공공재산을 특정인이 사유화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점포를 빌린 점주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를 다시 임차해 많게는 공식 임차료의 10배가 넘는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장기화되자 최근 감사원은 인천 지하상가 전체에 대해 감사를 벌여 부평역과 동인천역 등 인천 15개 지하상가 3579개 점포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2653곳이 재임대 점포인 것을 확인했다. 감사원은 이 조례를 전부 개정하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