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일본중독 치유를 위한 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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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와 닮은 자생적 국민행동…'철부지 행동' 폄하는 곤란
심각한 무역역조에 대한 성찰 기회…日은 정작 국산품 애용
경제 숨통 조이는데 일본여행 등 불요불급 지출 축소는 당연
'기술식민지' 주제 파악하고 '일제 타령' 중단할 계기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소설가 김원우는 산문집 '일본탐독'(2013년)에서 우리 사회 일각의 '일본 중독증'을 개탄했다.

그는 "명색 '일본 전문가'들은,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상당한 정도로 일본 제일주의적 신앙에 세뇌되어 제정신들이 아니고, 그래서 분명히 어떤 '균형 감각'을 잃고 있다"고 썼다.

이어 "더러는 그 중독증이 심해서 그 자신들조차 알게 모르게 '일본교'를 전파하느라고 열을 내기 시작한다"고 혀를 찼다.

최근 일제 불매운동을 둘러싼 비판과 우려를 보면서 김원우의 문장을 다시 보게 된다.

비판론자들은 불매운동을 현실을 모르는 감정적 철부지 행동쯤으로 치부한다. 기껏해야 반짝 효과에 그칠 뿐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한다. 홧김에 덤볐다가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억울해도 참자는 것이다.

좋게 보면 한일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감안한 우국충정의 고언이다. 하지만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부터가 영 불편한 것은 물론 그 현실인식이 과연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이번 불매운동이 과거와 다른 특징은 자생적이라는 점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알아서 행동실천에 나섰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와도 닮았다.

민초들의 자발적 움직임이기에 생명력이 길다.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지성을 통해 기상천외의 창의적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촛불혁명이 증명했듯 우리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 걱정하는 것처럼 감정적 행동으로 일본을 자극해 역효과를 빚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극소수 돌출행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차분해서 과연 반일감정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일본 싫다(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이 2005년 이후 최대(한국갤럽)를 기록할 만큼 국민감정이 악화된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다만 이를 섣불리 드러내지 않고 내면화하는 게 예전과 다르다. 우리도 일본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를 벤치마킹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일제 불매운동은 어느 시점엔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비판론자들은 일본도 우리 제품을 보이콧 하면 큰일이라며 겁을 주지만 일본은 원래부터 한국산을 사지 않았다. 밑질 것 없는 장사다.

세계적 명성의 삼성 스마트폰이 유독 일본시장에서만 맥을 못 추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현대차가 일본시장에서 부진을 거듭하다 끝내 철수한 반면, 도요타는 지난해 한국시장에서 1조 2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3년 만에 2배로 커졌다.

여행수지를 비교하면 아예 한숨부터 나온다. 우리는 지난해 754만명이 일본에 가서 6조 4000억원을 쓰고 일본은 295만명이 와서 2조 6000억원을 썼다. 일본 인구가 2.5배 많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흥청망청이 좀 심했다.

지금의 불매운동은 심각한 무역역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성찰에 가깝다. 비단 불매운동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했다. 더구나 국산품 애용이라면 일본이 단연 일등 아닌가? 일본이 뭐라 할 일이 아니다.

불매운동은 합리적 경제행위 차원에서도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정 뻔히 아는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제재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본격적인 '한국 때리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여행 같은 불요불급한 지출부터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일본이라도 한 손으로 우리 숨통을 조이면서 다른 손으론 여행 오라고 손짓할 수 없다.

결국 아베의 '경제 도발'은 우리 일상을 잠식해온 '일본 중독'에서 퍼뜩 깨어나게 해준 차라리 고마운 죽비소리다.

'기술 식민지' 신세를 여태 못 벗어난 우리를 주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분수를 모르고 '명품' 일제 타령을 했던 고질에서도 치유될 길을 열어줬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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