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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사건에 '원칙' 세우니…'무죄 구형'도 부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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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과거사 사과" 밝힌 지 2년 만

검찰 관계자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서 검찰 과거사와 관련한 전시물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형사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는 요청이 변호인이 아닌 검사의 입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검찰이 최근 몇 년간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잘못을 치유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면서 무죄 구형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9일과 1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과거사 재심 사건들에서 검찰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보아도 범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취지다.

9일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 재판에 나온 피고인은 69세 김오자씨였다. 이날 검찰은 김씨의 무죄를 구형했다. 앞서 김씨는 1975년 11월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이 이끈 '재일동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됐다.

재일동포인 김씨는 부산대로 유학을 와 있던 중 난데없이 대공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다. 김씨는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9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10일에는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법정에서 '무죄 구형'을 듣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0부(박형준 부장판사)에서 진행한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의 피고인으로 나온 이 상임고문은 검찰 측에 "감사하다"며 "20대 중반에 일어난 일인데 70대 중반에 들어서 재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1973년 서울 영등포 장훈고 교사로 재직하던 이 상임고문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유신헌법 반대 시위를 벌인 배후로 지목됐다. 당시 검찰은 이 상임고문을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하다 증거가 나오지 않자 북한 사회과학원이 발행한 철학서 등을 찾아내 불온서적을 타인에게 교부한 반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이 상임고문 역시 수사기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진술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피고인의 죄를 입증해야 할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는 것은 검찰 내부에서 금기시 되는 일이었다.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는 2012년 고 윤길중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윗선의 '적의처리(백지구형)'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한 일로 징계까지 받았다.

백지구형은 검사가 구형 없이 피고인에 대한 판단을 재판부에 맡기는 것이다. 검찰은 과거사 사건처럼 적법절차를 어기고 인권을 침해한 수사를 한 사실이 명백하고 피고인의 무죄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관례적으로 무죄가 아닌 백지구형으로 '자존심 지키기'를 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2017년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 직후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찰의 과오에 대해 사과한 이후로 검찰 내부 분위기도 바뀌어가는 추세다. 같은 해 8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약 2년간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은 487명에 달한다.

특히 최근에는 '과거사 재심사건 업무 매뉴얼'을 마련해 무죄 구형의 부담을 덜도록 했다. 매뉴얼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을 위한 증거도 적극적으로 수집·제출하도록 하고 백지구형을 지양하고 실질적으로 유·무죄를 구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제주지법에서도 4.3사건 폭도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에 대해 검찰이 '공소기각'을 요청하며 사실상 무죄를 구형하기도 했다.

재일동포 김씨의 재심 변호인인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보통 검찰은 적의처리를 해왔고 무죄 구형은 드물어 의미가 있다"며 "아직도 김씨와 비슷한 재일동포 피해자가 120명이 넘는데 한국 상황을 모르고 믿지도 못해 재심 진행이 어려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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