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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된 저출산 현상 –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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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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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포용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중 하나다. 이에 발맞춰 올해부터 아동수당, 돌봄교실이 큰 폭으로 확대되며 '사회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복지는 삶의 질 향상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우리나라의 현 사회복지가 어떤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우리 사회복지의 실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을 통해 정책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칼럼을 연재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은 이미 구조화된 현상이다. 2001년 이후 저출산 중에서도 저출산이라는 의미에서의 초저출산 현상을 나타내는 합계출산율 1.3 이하가 지금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50대 이상 중장년 세대라면 태어나서 인생을 함께 한 또래집단 수가 90만~100만 명 정도는 된다. 얼굴은 서로 모르겠지만 이른바 ‘콩나무 시루같은 교실’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가치와 경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세대이다. 40대 정도만 해도 같은 나이 또래가 해마다 80만 명 수준 정도는 된다.

여아낙태 등 극심한 낙태 현상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난 ‘82년생 김지영 세대’ 80년대 또래집단도 한 해에 60만 명이었다. 지금 막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20대 중후반 90년대생도 한 해에 60~70만 명은 된다. 그런데 2017년부터 한 해에 40만 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2017년 약 36만 명, 2018년 약 33만 명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전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2005년 이후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도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3차에 걸친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계획도 시행 중이다.

2021년부터는 4차 기본계획도 실시하게 될 것이다. 3차까지 기본계획이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 달성에 치중하였고 특히 출산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2018년 12월 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는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장기로드맵’ 발표까지 하였다(저출산ㆍ고령사회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 2018년 12월 7일). ‘장기로드맵’에서 국가는 더 이상 “아이 낳으라. 저출산 극복이다.”라는 류의 말을 하지 않고 성평등을 실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아이를 낳는 선택은 개인과 가족에게 맡기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선언하였다. 2020년까지 출산율을 1.5까지 높이겠다는 정책목표 제시를 통해 마치 여성을 아이 낳는 자판기 취급을 한 과거에 대한 반성이다.

국가가 자원을 투입하면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개발독재시대식 정책틀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극복해야 할 것은 저출산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도 찾아볼 수 있다.

자세한 정책 전환 방향은 위원회 발행 ‘정책로드맵’을 보면 되겠다. 그런데 새로운 개념으로써 나열한 정책 비전과 목표, 과제 등을 아무리 읽어봐도 한국사회에서 아이울음 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금방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노인기초연금을 도입하면 금방 노인들의 손에 현금을 쥐어줄 수 있다. 그러나 노인빈곤율이 감소하기까지에는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 하물며 아이 낳고 기르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정책 효과는 당장 손에 무엇을 쥐어줘도 불분명할 뿐이다. 결혼하기 어려워서 아이도 못낳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니까 신혼부부 대상 행복주택 지원을 한다.

그렇다면 행복주택에 들어간 신혼부부가 집이 생겼다고 당장 아이를 낳을까? 기대만큼 금방 낳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안낳고 둘만 행복하게 사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결국 과거 산아제한정책 하듯이 저출산 현상에 대응하는 접근은 이제 포기하고 우리 주변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자원과 시간, 그리고 관심을 집중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내 임기 내에 출산율 반등을 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급증을 정치인은 버려야 한다. “저출산 예산 130조원 쓰고도 효과 없다.”식의 선동적 보도를 언론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그 ‘저출산 예산’에는 지역아동센터 운영, 청소년약물중독예방 등 일반적 복지예산이나 대학교육지원 사업 등 교육부 예산이 절반 이상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정치인의 조급증과 언론의 선동적 보도가 나타나는 토대가 우리 대중에게 있다. 당장 눈에 띄는 출산장려금을 쥐어주는 시장과 군수를 더 이상 뽑으면 안된다. 임기 후에 완공되더라도 공립어린이집을 만들고 아이와 함께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하는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를 뽑아야 한다.

왜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는가? 이제 아이 낳고 기르는 과정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장년 세대만 하더라도 학교 졸업하면 취업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직장 다니다 보면 어느덧 ‘결혼적령기’에 접어들고 그러면 누구라도 만나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 결혼 후 언제 내가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경험을 지금 중장년 세대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혼해서 살다 보니 아이가 나왔고 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버지들은 열심히 나가서 돈을 벌었고 어머니들은 경력을 단절하고 집에서 무보수 가사ㆍ돌봄노동을 해왔다. 그런 삶을 당연하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청년세대들에게 ‘자연스러운’ 생애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획’이 있을 뿐이다. 취업을 하고 살 집이 생겨도 결혼과 임신ㆍ출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혼적령기가 사라졌다. 언제 결혼할지 아니면 하지 않을지를 치밀하고 기획한다.

특히 ‘시월드’라는 신조어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은 결혼 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성차별적 가족관계 앞에서 비혼의 길을 더 많이 선택하고 있다. 통계청에서 정기적으로 내놓은 사회조사에서 결혼 관련 인식이 변화하는 추세를 참고해 보기 바란다.

결혼했다 하더라도 임신ㆍ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역시 기획이 되었다. 아이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의 무게가 중장년 세대의 경험과 너무 다르다. 어머니 세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이 이제는 성차별의 상징처럼 되었다. ‘마누라’가 임신을 했는지 아이를 낳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열심히 나가서 돈 벌기만 하면 되었던 아버지들과 다르게 아빠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남성들은 ‘배우자’와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후 바뀌게 될 본인의 인생의 모습을 면밀하게 그려본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아이낳기는 자연스러운 생애주기 과정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만드는 기획이 되었다.

만약 저출산 현상의 지속을 문제라고 본다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획을 할 수 있도록 삶의 조건을 만드는 노력을 한국사회가 하면 된다. 그리고 기획을 실천에 옮긴 가족이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하면 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복지 영역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기 좋은, 사람을 우선하는 지역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소득보장, 의료보장, 취업지원 등 거시적 차원의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되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또한 주도적인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장 같은 규모의 예산과 인프라 수준에서도 지역사회 구조를 인간친화적으로 바꾸는 변화를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의 효과는 결국 지역사회, 우리가 사는 환경의 변화로 이어질 때 더욱 뚜렷해진다. 임신ㆍ출산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100% 완벽하게 보장해주고 아동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분담한다 하더라도 집 근처에서 찾을 수 있는 병의원이 없다면? 국공립 어린이집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이 안전하지 않다면?

아이를 낳기 전과 후 삶의 변화는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함(?)이 또 하나 있다. 아이 낳기 전에는 별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었던 길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다. 지하철, 버스 이용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편하게 찾던 동네 식당이나 수퍼도 가기 어렵다.

카페 하나라도 잘못 가게 되면 무슨 ‘충’소리를 듣는다. 여성친화도시, 아동친화도시라고 하여 지자체들이 평가 인증을 받고 있지만, 평가 인증의 근거가 된 건물이나 놀이터까지 가기 위한 길이 너무 험난하다. 학교 앞에만 있는 이른바 스쿨존에서 시속 30km로 다니는 차들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물면서 기쁜 경험이다. 당연한 일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운전자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왕복 6차선으로 잘 깔린 학교 앞 도로에서 단속 카메라만 없다면 그냥 가스페달을 밟아도 운전자 입장에서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연말마다 도로보수 명목으로 아스팔트를 새롭게 깔 뿐 기존 도로를 좁혀서 차는 불편하게 느리게 다니고 사람은, 특히 아이와 가족이 안전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 발상을 지자체 공무원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사는 아파트 단지만 벗어나면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자동차를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지역사회 환경을 하나하나 바꾸는 변화에 사회복지가 앞장 선다. 지역사회 조직을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 만들기 관점에서 재구조화해 보면 어떨까? 동네 작은 식당에도 유아용 의자를 비치하고 재래시장에 어른용과 아동용 쇼핑카트를 함께 준비하는 변화를 주도해 본다면? 모든 도로를 당장 뜯어고칠 수는 없겠지만, 복지관이나 센터, 어린이집 앞 도로만이라도 이른바 ‘도로 다이어트, 도로 좁히기’를 하여 과속방지턱이 없어도 차들이 시속 30km 혹은 걷는 속도(시속 7km) 이하로 달리게 하는 제안을 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복지관, 센터, 어린이집 등 지역사회 이용ㆍ생활시설 주변을 보행자 전용길로 만드는 구상을 해보자. 사회복지사로서 만약 일하고 있다면 내가 근무하는 건물 주변을 다시 한번 관찰하면서 어느 방향에서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고 걸어서만 우리 건물로 오갈 수 있는 길을 재구조화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살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 순간 지역사회에서 고립되고 자동차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 구조가 존재함에는 시선을 굳이 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가 걷기 좋은 안전한 지역사회는 모든 사람에게도 걷기 좋고 안전한 지역사회이다. 사회복지가 만들려는 지역사회의 모습이다. 운전대에만 앉아서 하루 종일 보낼 수 없다.

운전대를 떠나는 순간 자동차로부터 위협받는 존재로 나는 돌아간다. 이런 생각으로 지역사회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많은 아이디어가 생길 듯하다. 초저출산 사회 한국에서 지역사회 조직 관점에서 사회복지가 지역사회를 인간친화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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