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등 환송인사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5당대표 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북유럽 순방길에 오르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제외하자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역제안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옹호론이 중론이지만 장외투쟁까지 나서며 국회 파행을 이끌고 있는 한국당을 어떻게든 보듬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이견 또한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통령-5당대표 회담' 후 황 대표와의 일대일 별도 회담은 황 대표가 이를 수용하는 대신 '대통령-교섭단체 3당대표 회담'으로 역제안을 하면서 성사가 불발됐다.
청와대 측은 그간 고민의 포인트였던 일대일 회담을 수용하면서 황 대표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니 황 대표도 대화의 의지가 있다면 청와대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해 결국 지난 9일 출국 전 회동은 무산됐다.
당내에서는 대통령이 먼저 회담을 제안했고, 이후 일대일 회동, 회담의 의제에 현안 포함 등 한국당의 요청까지 수용한 만큼 황 대표의 역제안은 청와대가 받을 수 없을 것을 알면서 내놓은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주류 의견으로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10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황 대표의 제안은 앞선 관행에 따라 함께 만나오던 다른 정당들과는 대화를 끊으라는 것"이라며 "국민 통합의 차원에서 각 당 대표를 보자는 것이고, 이런 형식도 앞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협상의 교착으로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민생 관련 법안이 전혀 처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통 큰' 포용력을 보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대통령과 정당대표 간 회담과 국회 운영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2개월째 파행 중인 국회 정상화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당이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사태 이후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장외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당대표인 황 대표와 교섭단체 대표인 나경원 원내대표 모두가 국회 현안을 걸고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대통령 회담과 현안 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당내에서 대통령-대표 회동과 국회 정상화 협상을 잘 분리시키지 못해 야당이 원하는 대로 두 가지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께서 '일대일 회담을 먼저 하자'고 하는 등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대통령에게 어떤 내용을 제안하고 발언할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에게 맡긴 채 대통령의 급에 맞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포용력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훌륭한 전략이 된다는 판단이다.
문 대통령의 결단으로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출석했지만 야당이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던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때처럼 청와대가 통 큰 결정을 하더라도 여당에는 실질적인 해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도 한 포석이다.
이러한 전략은 이른바 범진보진영으로 불리는 일부 야당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께서 해외순방 출발하시며 국회의장께 전화하셔(서) 추경 심사 처리 등 국회 정상화를 부탁하셨는데 번지수가 틀렸다"며 "전화를 하실 곳은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로, 설사 거절을 받았더라도 국민은 대통령의 노력에는 열광적인 박수를, 한국당에는 비판을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는 청와대 참모진이 경직된 사고로 대통령의 결단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관행 등을 이유로 대통령의 활동 폭을 좁히다 보니 이명박, 박근혜 등 이전 정권 지도자들에 비해 문 대통령의 장점으로 꼽히는 겸손함이나 솔직함, 진정성 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야당의 무리한 요구에도 포용력을 보여준다면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는 점보다도 '야당이 정말 오만하구나'하는 점들이 더 부각될 것"이라며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에 실패한다면 현 야당이 집권했던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와 다를 바 없는 정부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검사와의 대화', '대연정 제안' 등이 가져온 후폭풍을 잘 알고 있는 현 청와대 참모진이 선뜻 적극적인 전략을 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회담 역제안은 야당이 뾰족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패스트트랙을 저지하고자 들고 나온 카드인 만큼 그 제안만이라도 수용했더라면 어떻게든 정국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