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사진=연합뉴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38부(박남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유 변호사가 문제 삼은 형사소송법 제200조와 제312조 모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200조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하여 진술을 들을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이다. 제312조는 검사나 사법경찰관의 조서의 증거능력을 규정한 조항인데,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대해서만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라고 우월적 지위를 인정한 부분이 지적됐다.
재판부는 제200조 자체가 위헌적이어서 '피의자 공개소환'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실무 때문이라고 기각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부분에 대해서는 2005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한 취지를 인용했다.
유 변호사는 지난 4월 자신의 공판준비기일에 해당 조항들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특히 제312조의 경우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 힘빼기'를 위한 핵심 조치로 다뤄져 이번 결정에 관심이 주목됐다.
그간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에서 피고인(조서 작성 당시 피의자)이 스스로 그 내용을 부정하거나 번복하더라도 증거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경찰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에서 피고인이 부정하면 증거로 쓰이지 못하는 것과 비교된다.
대법원도 최근 이 문제에 관한 국회 질의에 대해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요건을 경찰의 그것과 동일하게 하더라도 실무상 형사재판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증거능력 문제 취지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2005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온 지 14년이 지났고, 당시 합헌 결정도 제312조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며 입법적 보완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해당 결정문을 들어 기각한 데는, '사법농단' 재판 지연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가 유 변호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게되면 원칙적으로 본안 소송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각 결정으로 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소원 청구 자체는 기존 재판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