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대북 쌀 지원이 '잘못된 신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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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무례한 태도에도 인도적 지원 불가피…전략적으로도 유용
美 '신뢰위반 아냐', WFP '인도주의-정치' 분리…韓, 국제 인식·거리감

(사진=연합뉴스)

 

참 고약하다. 남녘 동포들이 모처럼 온정의 손길을 내밀려는 찰나 북한은 미사일을 쐈다.

더 얄궂은 것은 삐뚤어진 언설이다. 대북 식량지원을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 헐뜯었다.

순수한 동포애마저 의심하고 모욕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정나미가 떨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분단 민족의 운명인 것을. 마음 같아선 뭐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상황만 악화될 뿐.

우리는 지금 인도적 식량 지원조차도 딜레마적 선택이 돼야 하는 고단한 분단 현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결론은 이미 내려져있다. 평화통일 목표를 버리지 않는 한 어떻게든 북한을 다독여 나가는 게 우리의 숙명적 과제다.

이는 꼭 인도적 차원 뿐 아니라 전략적 견지에서도 그렇다.

보수 일각에선 대북 식량 지원이 북한 체제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격이라며 한 톨의 쌀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인도적 처사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는, 오히려 인도적 조치라는 기발한 논리도 덧붙여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북한 붕괴론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며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대북 지원(직접 공여는 2010년 이후 0원)이 이명박 정부 이후 뚝 끊겼음에도 북한 경제가 유지되고 핵 개발까지 완성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최대의 압박'이 드디어 효력을 발휘해 북한의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매몰비용 효과'다.

그러나 쌀 몇십만 톤에 무너질 정권이라면 어떻게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관여 여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참고로 국제기구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136만톤인데 우리 정부의 지원은 실행되더라도 최대 30만톤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과거와 달리 비료 지원은 없다는 점이다. 대북제재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매년 1천억원 안팎의 비료가 공여됐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재가 지속되는 한 식량 증산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북한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제2, 제3의 보릿고개를 겪고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만약 냉철한 보수 전략가라면 '대북 지렛대'를 키울 절호의 기회로 보고 오히려 식량 지원을 늘리자고 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최근 잇달아 무력시위에 나선 이후에는 '잘못된 신호' 논리가 부쩍 늘어났다. 북한의 도발에 보상을 하게 되면 나쁜 행동을 고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그리 단순한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도발'이라 규정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조건 없는' 북일정상회담을 제안하며 민첩한 외교 변신에 나선 것도 의미심장하다.

유엔 산하기관인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빗 비즐리 사무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면담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방한 중인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인도주의-정치 분리' 원칙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국제사회의 인식은 북한이 아직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북한의 우방국들을 물론 유럽을 비롯한 다수 국가들이 크든작든 지원에 나서는 동안 우리만 반대 차선을 달릴까 우려된다.

보다 현실적인 걱정은 따로 있다. 국내외 눈치를 보다 어정쩡한 결말을 맺을 가능성이다.

그때는 북한이 그야 말로 '생색내기'라 비난해도, 보수 일각에서처럼 '잘못된 신호'라고 비판해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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