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저녁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법안 접수를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경호처 직원들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재개발지구의 한 빌라에 거주하던 A씨는 2018년 12월 재개발조합이 무리하게 강제집행을 시도한 것에 분개했다. A씨는 다른 거주민 13명과 함께 시청을 찾아가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 공무원들이 청사 출입문의 알루미늄 셔터를 내리며 진입을 차단하자 셔터문을 잡아당겨 파손했다. 또한 시청 건물로 들어가 민원 담당 공무원과 청원경찰, 청사 방호 담당 공무원 등에게 욕설을 하고 미리 준비한 오물(썩힌 은행 등)을 넣은 비닐봉지를 던졌다. 올 1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A씨에 대해 공용물건손상·특수공무집행방해·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 안건)을 두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약 50명이 고발당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제15장에 명시된 '국회 회의 방해 금지' 관련 조항(제165~167조) 등을 위반한 혐의다. 이 법과 비슷한 '일반법'인 형법상 공무집행방해·공용물 파괴죄나 폭력행위처벌법 등은 최근 법원에서 엄중하게 처벌되는 추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역시 법망을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앞선 판결에 대해 "10년 전이었다면 충분히 벌금형이 나왔을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우선은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고 파괴된 셔터문의 수리비가 170만원 상당으로 아주 값비싼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A씨와 거주민들의 딱한 처지를 고려해 당시 피해를 당한 시의원과 공무원들이 나서서 처벌불원 탄원서를 써주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가 사람들을 모아 시청까지 향하고 오물을 미리 준비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보고 벌금형이 아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했다. 다만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로 양형했다.
앞으로 검찰 조사를 거쳐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혐의도 A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다중의 위력을 보이는' 행위를 한 점 등에서는 더 엄중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다수가 참여하는 집회·시위에서 폭력이나 손괴가 발생했을 때 법원은 해당 상황을 주도한 사람 또는 막을 책임이 있었지만 방조한 사람 등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보수단체의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행위로 집회 참가자 3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다치자 법원은 당시 시위를 주도한 2명에게 각각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과격한 발언으로 참가자들의 폭행 등을 유발한 점이 인정된다"고 선고 취지를 밝혔다. 자유한국당의 시위 과정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보좌진을 앞세워 몸싸움을 하거나 고성과 욕설을 하며 공격적인 대응을 강조한 점 등에 대해 법원이 무거운 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찰에서 정치적 논란에 부담을 느껴 형법상 공무집행방해 등보다 국회법상 회의방해죄의 적용을 굉장히 '좁게'할 수 는 있을 듯 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렇게 될 경우 형법에서의 기소 사례와 비교해 형평이 심각하게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고 국회선진화법의 취지 역시 사문화시킬 수 있어 난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기소범위를 정무적 판단에 따라 조율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영상이나 사진 등으로 명확한 범죄 행위가 '채증'이 된 상태라면 기소를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민주노총 조합원인 B씨는 지난달 3일 국회 앞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등에 반대하며 국회 진입시위를 벌이던 중 앞 대열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앞사람의 허리춤을 잡아 지탱해주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경찰의 채증 영상을 확인하자 국회 담장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B씨가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 나타나 있었다. 담장이 무너지는 데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했는지는 판별이 불가능했지만 경찰 측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찍히면 기소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에서 회의 방해 목적으로 회의장 앞을 가로막거나 특정 의원을 감금하는 등의 행위를 한 의원들의 영상이나 사진은 이미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다. 일반 사건에서는 '채증→기소'까지 빠르게 진행하면서, 국회법 적용 사안에서만 증거가 충분함에도 예외를 둬 기소하지 않는다면 논란이 될 수 있다.
고발된 의원이 국회 회의 방해죄로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10년간이다. 사실상 정계 복귀는 어려워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