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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중국에서 꽃 핀 조선 청년들의 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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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루트 답사②] 천녕사와 동정진망열사묘에서 찾은 조선인의 흔적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동안 임시정부의 큰 줄기와 관계가 없어 조명되지 않았던,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중국에서 피와 땀을 흘렸던 조선 청년들이 있다.

◇ 폐허로 변한 곳에서 조선인의 기개를 찾다

취재진이 찾은 천녕사 터. 정문 앞 두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수백년을 버티며 당당하게 서 있다. (사진=김세준 기자)

 

난징시 외곽에 위치한 황룡산. 안내 표지도 없고 교통도 불편해 찾기 조차 어려운 이곳에 독립을 갈망하며 피와 땀을 흘린 조선 청년들이 있었다.

황룡산 중턱 오르막길에 세워진 건물 사이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 올라가면 천녕사라 씌여진 표지판을 확인 할 수 있다. 긴 세월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폐허로 변해버린 이곳에 조선 청년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이곳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이 훈련을 받은 곳으로 전해진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는 약산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군사 훈련을 할 수 있게 만든 단체다. 이 학교에서 길러낸 125명 중 3기생 44명이 이곳 천녕사를 거쳐갔다.

천녕사 터 오르는 길에서 발견한 종이 팻말 (사진=배덕훈 기자)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은 듯 이 곳은 폐가나 다름없는 건물들이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다.

폐가처럼 남아 있는 이 건물 역시 과거 조선 청년들이 훈련하고 생활했던 터전은 아니다. 과거 중국 정부가 천녕사 터를 다른 목적으로 복원했는데 현재는 그 건물조차 폐허가 돼 지금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곳에서 조선 청년들이 자주 독립을 염원하며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어림짐작 할 뿐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폐허가 된 천녕사 터 정문 앞에 우뚝 서 있는 두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만이 당시 조선인들의 기개를 상징하듯 당당하게 서 있을 뿐이다.

◇ 광저우에서 꽃핀 조선인의 기개

황포군관학교 정문 모습 (사진=배덕훈 기자)

 

광저우를 가로지르는 주강 안 황포섬에 위치한 황포군관학교는 중국 최초의 현대식 군관학교다. 이곳은 현재 해군부대가 주둔해 있고, 강 위에는 군함이 정박해 있어 현재까지도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황포군관학교는 1924년 국공합작 이후 소련의 지원 속에 국민당과 공산당이 같이 참여해 지었는데, 당시 조선 청년들의 입교도 허락됐다.

이곳에서도 자주독립의 열망을 품은 수 많은 조선 청년들이 피와 땀을 흘렸다.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서지 못하고 타국인 중국의 내전에 희생됐던 청년들도 있다.

황포군관학교 인근에 위치한 동정진망열사묘는 광저우 군벌인 진형명의 난을 제압하기 위해 벌인 전투에서 사망한 황포군관학교 재학생들의 시신을 안치한 묘지다.

전투에서 사망한 황포군관학교 재학생 및 예비 입학생들이 묻힌 무덤. 이곳에 조선 청년인 김근제와 안태가 있다. (사진=김세준 기자)

 

이곳 가장 안쪽에 두명의 조선 청년이 잠들어있다. 황포군관학교 6기생인 김근제와 안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학생들의 묘비가 세워진 곳에 함께 위치한 이 두명의 조선 청년 묘비에는 한국인임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외에 자세한 내력은 찾기 어려웠지만, 조국 독립의 열망을 품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드높인 조선인의 기개는 선명하게 남아있는 듯 보였다.

이곳 동정진망열사묘 구석 한켠에는 색바랜 비석이 하나 우뚝 서 있다. 그 비석에는 '정기장존(정의로운 기개는 길게 보존된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정기장존'이 써있는 비석 (사진=배덕훈 기자)

 

이 비석의 문구처럼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타국에서 스러져간 조선 청년들의 기개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꼿꼿이 보존되어 가고 있다.
글 싣는 순서
① 임정 루트 4000km, 100년 만의 시간여행
② 중국에서 꽃 핀 조선 청년들의 기개
(계속)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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