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 씨가 4일 오후 체포돼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남양유업 창업주 고(故) 홍두영 명예대표 외손녀 황 씨(31)가 4일 경찰에 체포됐다. 현재 황 씨는 마약 관련 혐의 일부를 시인한 상태다.
황 씨는 과거 마약투약‧유통 혐의로 입건됐지만, 경찰의 소환조사조차 없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부실조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황 씨에 대한 범죄 의혹이 제기되며 대부분의 언론에선 황 씨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 보도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결혼상대로 황 씨가 처음 보도된 이후부터 지난 1일 마약 의혹이 불기 전까지 당초 언론에선 모자이크 없는 황 씨의 실물사진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황 씨 사진에 칠해진 모자이크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황 씨의 기사에 "쟤(황 씨)는 왜 모자이크?" "피해자도 모자이크를 안 하면서 황 씨를 모자이크 할 필요가?"라며 언론의 모자이크 처리 기준을 지적했다.
정말 재벌3세 황 씨의 사진은 모자이크를 안 해도 괜찮을까?
◇ 언론의 신상공개 기준은 '공익' 여부언론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당사자의 인격권때문이다.
얼굴이나 성명 등 신상정보가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공개될 경우 당사자의 명예나 초상권 등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에선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해 개인의 인격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말 것을 언론에 권고하고 있다.
범죄 보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인권보도준칙 제2장에선 "언론은 범죄 사건의 경우 헌법 제27조의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적었다.
범죄 피의자이더라도 언론이 그의 신상을 공개할 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신상을 공개해 인격권을 침해하더라도 위법성 조각 사유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할 때다.
법원에선 그동안 명예훼손 소송 등의 판결에서 해당 인물이 국회의원, 도지사 등과 같이 '공인'이거나 해당 보도가 사회적인 공익을 실현하는 경우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로 지난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발간한 '2017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보면, 2017년 한 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기각(원고패소)된 143건 중 28.7%인 41건이 보도의 공익성 및 상당성이 인정됐다.
◇ 전문가들 "황 씨는 공인 아냐"황 씨의 신상공개 여부는 이와 같은 배경에서 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황 씨는 실명은 한 매체의 보도 이후 공개된 상태지만, 사진은 대부분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황 씨가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황 씨가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거나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왔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유명 연예인의 결혼 상대였던 점, 재벌3세라는 점만으론 공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성규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 정치인 등 공공의 관심사를 받는 사람이 공인"이라며 "과거에 블로거를 했든 유명 연예인의 결혼 상대였든 근본적으로 공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언론인권센터의 윤여진 상임이사 또한 "황 씨가 연예인도 아니고 사회적 직위를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예를 들어 한 유튜버가 피의자로 지목될 경우에도 신상을 공개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슷하게 이미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거나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재벌3세들에 대한 보도의 경우 실명조차도 거론하지 않는 상황이며, '버닝썬 사태'의 주요 인물로 꼽히고 있는 이문호 버닝썬 공동대표 또한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돼 보도되고 있다.
마약 구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SK그룹 창업자 고 최종건 회장의 손자 최모(31)씨가 1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들어서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평소 알고 지낸 마약공급책으로부터 고농축 대마 액상을 5차례 구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거기에 황 씨와 비슷한 사례에 대해 공인이 아니라고 결정한 판례도 존재한다. 서울지방법원은 2001년 당시 판결에서 유명 가수의 결혼 상대로서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일각에선 확정 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에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는 황 씨 사진의 모자이크 처리에 대한 CBS노컷뉴스의 문의에 "피의자로 전환됐다고 하지만 인격권 침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가급적 모자이크 처리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성규 변호사는 "재판 결과가 유죄로 확정된 것이 아님에도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로 볼 수 있다"며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도 마약 유통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안 자체를 지적하며 공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마약 투약, 피의자 신상 공개 범죄에 해당 안 돼다만,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의 피의자에 대해선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제8조2에 따르면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③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④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경찰은 2017년 '어금니아빠' 이영학과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 피의자 김성수의 신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황 씨의 경우 특강법상 신상 공개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특강법에서 규정하는 '특별강력범죄'에 마약 사용은 없기 때문이다.
특별강력범죄엔 ①살인 ②약취, 유인 및 인신매매 ③강간 및 추행 ④절도 및 강도 ⑤폭력 단체 등의 구성‧활동 등이 있다.
종합하자면 황 씨는 재벌3세이지만 현재 공인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특강법상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대상도 아니다. 따라서 언론이 황 씨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실현하려는 공익보다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