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박하사탕' 영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봉수, '공공의 적' 강철중, '오아시스' 홍종두, '광복절특사' 재필, '실미도' 강인찬, '역도산' 역도산, '그놈 목소리' 한경배, 해운대 '최만식', '감시자들' 황반장, '소원' 동훈, '불한당' 한재호, '살인자의 기억법' 김병수…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데뷔해 26년의 경력을 가진 배우. 영화 출연작만 40편 넘고, 관객들에게 익숙한 대표작만 수 편을 가진 배우.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예술상, 영화평론가협회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까지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웬만하면 이견을 찾기 힘들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지난 7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여전히 '최고'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아들 죽음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유중식 역의 설경구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설경구는 쉽게 자기 평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가 저를 어떻게 평가하지?"라고 되물으며 "아직 모르"고, "아직 멀었다"고 답할 뿐이었다. 연기는 내가 '완성하겠다'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밝힌 배우 설경구를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우상'을 좀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사건 당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련화(천우희 분)가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고, 이야기도 간단하지 않았기에 '우상'은 유독 어렵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설경구는 "저도 그 부분을 걱정한 게 매니저한테도 '어려웠어?'라고 물어보게 되더라. 어렵게 안 봤으면 좋겠다. 편하게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지난달 제69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됐을 때도, 설경구는 "불안불안하면서 봤다"고 밝혔다. 그는 "베를린 때부터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설경구는 "국제영화제는 (영화가 별로면) 냉정하게 나가버리는 관객들이 있어서 좀 걱정했다. ('우상'에) 좀 불편한 장면도 있었고. 근데 안 나가더라. 되게 몰입도 있게 보는 것 같았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우상'은 파노라마 섹션 초청 당시 전석 매진된 바 있다.
또한 설경구는'우상'을 더 효과적으로 보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우상'이라는 제목도, 사건이란 단서도 잊어버리고 인물을 좇으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사건은 중간에 (이야기의) 본질에서 빠진다. 사건과 제목이 아니라, 각자 길을 가는 세 인물을 따라가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 '불한당' 이후 연기에 대한 태도 바뀌어설경구는 느와르 장르의 '불한당'(2017)에서 한재호 역을 맡은 후 '불한당원'이라는 열성 팬덤이 생겼다. 영화 '불한당'의 팬으로 시작해 설경구의 팬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50대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다는 의미로 '지천명 아이돌'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에게 '불한당'은 자신을 응원하는 든든한 사람들이 생긴 작품이면서, 연기에 관한 생각을 바꿔준 작품이었다.
설경구는 "폼도 잡아야 되는구나, 만드는 것도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연기를) 너무 순진하게만 접근하지 말아야겠다고. '불한당' 끝나고 그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영화를 대단히 철저하게 계산해서 한 건 아니지만, 다른 방향의 연기도 있겠다, 감정 이입해서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도 지금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경구가 맡은 유중식은 아들의 죽음 뒤 어떤 진실이 있는지 파헤치려는 인물이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설경구는 "저 혼자 각을 잡거나 보여주는 연기도 필요하고, 오히려 그게 더 (관객들에게) 와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불한당' 끝나고 나서 하나의 전환이 와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언제나 변치 않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또 베를린영화제까지 와 준 불한당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설경구는 "저는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베를린인데… 카페 베를린도 아니고. 설경구 봉을 들고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다. 반가우면서도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연신 "진짜 반가웠다"고 말했다.
차기작 '킹메이커'도 '불한당' 변성현 감독과 다시 만난 작품이다. 설경구는 "'킹메이커'는 불한당 팀이 다시 넘어온 작품"이라며 "사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좋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놓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생기니 되게 좋다. 고맙고, 진짜로 감격스럽다"고 밝혔다.
◇ 설경구가 생각하는 '연기'란하지만 설경구는 '불한당'에서 보여준 '말끔한 미중년'의 얼굴 외에도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은 배우다. 그는 "'불한당'과 같은 옷만 입을 순 없다. 저는 좀 다른 얼굴을 만들고 싶다. 또 복제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배우는 아닐 테니까"라고 분명히 말했다.
"영화를 하면서 늘 부족함을 느껴요. '우상'은 다른 식의 표현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냥 집중해서 찍지 말고 좀 더 계산해서 찍었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구명회) 지지 연설 갔을 때 석규 형을 보면서 숙여버리거든요. 그때 내가 뭘 했어야 했는데, 그런 게 막 보이니까 '아이, 난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도 경력이 꽤 되고 20년 넘게 했는데 나아지는 게 아니고 더 힘들어져요, 막. 솔직히 얘기하면. 이런 영화는 몰입하고 (저를)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디테일까지 좀 계산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좀 더 (영화가)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배우 설경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그렇다면 '우상' 개봉을 앞두고 냉정하게 자기 평가를 한다면 어떨까. 그러자 설경구는 "제가 저를 어떻게 평가하지? 아직 모른다. 아직 멀었다. 영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전부터 저는 연기라는 게 뭔가 완성 짓겠다, 하는 작업은 아닌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무모한 직업이기도 하면서 집착하는 직업"이라고 답했다.
이어, "저는 연기는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캐릭터가 100% 완성된 모습을, 어떤 배우가 보여줄 수 있을까?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단지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한 캐릭터여도 여러 배우가 하면 다르게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과연 연기가 예술인가? 하는 생각까지 가게 된다"고 부연했다.
"저는 계속 기회를 주시는 게 사실 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복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영화를 다시 또 하고 있잖아요. 전에 어떤 후배 배우랑 얘기하다가 '너 50 되어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니, 그 친구가 살짝 긴장하더라고요. '(50대 배우가) 많이 없네~'라고 하면서요. 저는 되게 복이 많은 것 같아요." <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