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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우상', 쉽게 쓰인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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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우상' 유중식 역 설경구 ①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우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상'(감독 이수진)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한석규 분)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사건 당일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련화(천우희 분)가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설경구는 '우상'에서 유중식 역을 맡았다. 아들 부남과 맞춘 샛노란 머리색으로 시선을 뺏는다. 아들을 잃는 것으로 시작되기에, 감정의 높낮이로 보면 가장 높이 솟아올랐을 때 등장한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웜 업(warm-up) 자체가 없는 캐릭터"였다.

그는 책을 받았을 때부터 이게 쉽게 생각하고 쓰인 책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면서, 캐릭터도 좋고 느낌이 워낙 강력했다고 설명했다.

'살인자의 기억법'(2017) 이후 개봉작이 없어서 18개월 만에 영화 홍보 인터뷰를 한다는 설경구를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작품을 향한 '강력한 집요함'에 끌려

'우상'은 지난 7일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왔다. 인터뷰가 시사회 바로 다음 날 진행된 만큼, '어렵지 않았나'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설경구는 "쉽진 않았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책(시나리오)을 되게 촘촘하게 본다. 뭐 하나가 틀어지면 연결이 안 되는 스타일이다. ('우상'은) 진짜 생각을 쉽게 하고 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중식뿐 아니라 구명회, 련화 등 다른 캐릭터도 무척 좋았고,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가장 강조한 것은 이수진 감독의 집요함이었다. 이 감독의 전작 '한공주'를 아주 잘 봤다는 설경구는 "집요함을 오랜만에 한 번 느끼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집요할 줄 몰랐지만…"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감독들이 집요하긴 한데, 작품에 대한 집요함이 이 정도인 경우는 "진짜 오래간만"이라고. 그는 '우상'을 읽고 멍해졌으며 아주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설경구가 맡은 유중식은 아들의 죽음 뒤 어떤 진실이 있는지 파헤치려는 인물이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유중식은 이름에서부터 고단한 삶의 흔적이 나타난다. 점심을 의미하는 '중식'이기 때문이다. 아침 못 먹고 허겁지겁 해치우는 급한 식사 같은 느낌이란다. '부남'이란 아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몸은 불편해도 가정을 꾸리고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보여주기 위해 외형적으로도 신경 썼다. 태닝으로 얼굴을 까무잡잡하게 했고, 체중을 줄였으며, 샛노랗게 탈색했다. 설경구는 "첫인상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죽음을 듣고 화난 상태에서 급하게 운전대를 돌리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딱 각인시켜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 유중식이란 인물을 봤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자꾸만 '이 사람은 왜 이래?', '왜 이런 선택을 해?' 하고 물음표가 떴다. 다행히 이 감독과 충분히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의문을 풀었다. 설경구는 유중식을 "정상적이지 않은,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을 '지천명 아이돌'로 만들어 준 '불한당'(2017)과는 다른 캐릭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충무로의 자타공인 연기파 배우인 만큼, 연기를 '제대로 보여줄' 작품을 기다렸다고. 설경구는 "'우상'이 그랬던 것 같다. 감독도 거기에 맞았던 것 같다"며 연기 욕심은 "매번 있다"고 밝혔다. 연기를 "진하게 좀 해 보고 싶었다"고.

◇ 주인공인데 대사가 별로 없다?

유중식은 또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잃고 나서 끝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았다. 자기 힘으로 인생을 끌고 나가는 주체성이라곤 없었다. 행동(action)하기보다는 반응(reaction)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설경구는 처음 대본 리딩하던 날 일화를 들려줬다. 리딩하는데 본인 대사가 거의 없었단다. 그래서 "무슨 리딩을 해요? 대사도 없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명회와 련화가 나름대로 위기를 돌파해 간다면, 중식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그 방법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설경구의 설명이다.

'끔찍하게 아끼던 아들을 시신으로 만난다.' 극중 유중식의 출발이 이랬기에, 설경구도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다. 절정에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식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영화 '우상' 대본 리딩 때 설경구의 모습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설경구는 "현장 가면 제 촬영분은 헐떡거리면서 숨차서 시작하는 게 많더라.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뭔가 터지는!"이라며 "감독님은 제게 '독이 올라서 현장에 온다. 링에 올라가서 싸울 듯이'라고 하는데, 웜 업 자체가 없는 캐릭터이다 보니까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감정을 머리 꼭대기까지) 올리고 시작해야 하는데 제 의지가 하나도 없다"며 "접근하기에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극중 중식의 선택은 단 하나도 없었을까. 이에 설경구는 "하나도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선택이 여러 가지 경우에서 가능한 거라면, 중식에겐 '경우의 수'가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 계산되거나 과잉된 연기하지 않으려 노력

유중식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들 부남을 쫓다가, 그 방향을 사라진 련화에게로 돌린다. 련화의 뱃속 아기 때문이다.

"(중식은) 아이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다가 여관방에서 태아 사진 보고서 핏줄 쪽으로 (생각을) 틀어버리거든요. 자기가 (아이 갖지 않게 아들을) 수술시키고, 부검도 하면서 (자기 아들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아이로 해 버리자'고 선택해요. 그때부터 집착하면서 안 좋은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되죠. 련화 배 속의 아이가 부남의 아이가 아닌 걸 알면서도 부남의 아이, 내 아이로 하려 하고요.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되게 중요한 지점이죠, 그 태아 사진이. 중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고요. 중식은 아마 '내가 나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가해자 아버지 지지 연설까지 하겠죠."

'핏줄'을 향한 비이성적인 집착을 표현해야 했으나, 설경구는 연기를 과하게 끌고 가고 싶진 않았다. 다만 지능 수준이 낮은 아들과 오래 지내면서 중식도 자연스레 아이의 여러 면을 닮았다고 봤고, 감정을 드러낼 때 '애같이' 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설경구는 "둘은 되게 고립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며 "둘만 생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비슷해져 간다고 하지 않나. 아들의 눈에 맞추다 보면 중식도 부남의 톤으로 말했을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젖어 든 습관이,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나올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배우도 자기가 어느 정도는 계산해서 연기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계산'을 하는 최종 주체는 감독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일단 갈게요', '한번 해 볼게요'가 기본자세였고, 가장 좋은 장면을 고르는 것은 이수진 감독 몫이었다.

◇ 현장을 부드럽게 풀어준 한석규, 웃음 잃지 않은 천우희

설경구는 '우상'을 같이 찍은 한석규와 천우희에 관해서도 덕담을 전했다. 우선, 한석규에 대해서는 "사실 막 그렇게 유한 현장은 아니었는데 석규 형이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있었다. 전 그런 걸 안 한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하고"라며 웃었다.

이어, "'우상'이 아무래도 예민한 현장이었는데, 석규 형은 전체를 차분하게 아우르는 게 있더라. 그건 해야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고 어떤… 마력 같다"고 덧붙였다.

천우희를 두고는 "되게 힘든 캐릭터고, 힘든 연기를 곧 해야 하는데도 그 친구는 히죽히죽 잘 웃더라. 왜 웃냐고 했더니 '웃지 뭐 해요? 그럼 화내요?' 하더라"라며 웃었다.

'우상'에서 각각 구명회, 련화 역을 맡은 배우 한석규와 천우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설경구는 "자기는 징징거리는 걸 싫어한단다. 저는 그렇게 못 한다. 예민한 상태로 놓여있지. 그래서 '내가 너(우희)한테 좀 배워야겠다'고 했다. 그게 인상적이었다"고 부연했다.

또한 설경구는 '우상'에서 한석규와 그렇게 많이 붙지는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석규 형이랑 부딪히는 게 별로 없다. 끝날 때까지 각자 가서 아쉬움이 있다. 좀 더 부딪혀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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