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들었던 모래사장, 지금은 제주 관광명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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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억과 추억 사이 ②] 제주 함덕해수욕장
동부지역 토벌대 근거지였던 함덕…9연대 1개대대 주둔
'청년'이면 이유 없이 총살…눈 앞에서 아들 잃은 아버지
죄 없이 끌려간 청년들 총살 말리던 초대 이장도 희생
80년대 관광지 개발로 4.3흔적 사라져…안내판도 없어

9일 오후 함덕해수욕장. 4.3 당시 함덕리민과 중산간 주민이 군경에 의해 총살됐다. (사진=고상현 기자)

 

9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 번화한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최신 대중가요 음악이 관광객을 맞이했다. 가족과 연인들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거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함덕해수욕장은 4.3 당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함덕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희생된 곳이다. 총탄세례와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하얀 백사장은 늘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비극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다.

◇ '청년이라는 이유로…' 결혼 한 달 뒤 총살된 큰 형

이날 함덕해수욕장에서 만난 김두연(75) 전 4.3희생자유족회장의 큰 형 역시 1949년 1월 19일 현재 해수욕장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옛 함덕국민학교 운동장 인근에서 총살됐다. 큰 형이 결혼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김씨는 5형제 중 막내다.

옛 함덕국민학교 터. 현재는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주차 공간으로 변해 있다. 4.3 당시 학교 운동장에 심어져 있었던 고목 몇 그루만이 남아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1948년 11월 계엄령이 내려지니깐 군경이 동네 청년들을 무장대로 몰아 잡아다 죽였어요. 큰 형은 도피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께서 자수하라고 해서 자수했는데 총살됐어요." 큰 형이 발각될 시 일가족이 몰살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삼대독자'였던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특히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만 믿고 아들을 데려갔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큰아들이 다른 마을 청년 7명과 함께 총살되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만 있어야 했다.

"형이 총살을 피해 도망갔는데 한 50m 지점까지 군경이 쫓아가서 총살했어요." 김씨는 큰 형이 총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과거 개천 자리를 가리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현재는 시멘트 길 주위로 식당가가 자리 잡아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김두연(75) 전 4.3희생자유족회장이 큰 형이 총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4.3 당시엔 개천이 흐르고 있었지만, 현재엔 식당가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큰 형의 시신도 총살 직후에는 군경이 지켜서고 있어서 마음대로 수습을 못했다가 나중 돼서야 겨우 야산에 묻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가족 묘지에 안장됐다.

"지금은 대형 리조트가 들어선 함덕고등학교를 다닐 때였어요. 실습 시간에 밭을 개간하는데 유해가 수시로 나왔어요. 4.3 때 희생된 사람의 것으로 보였는데 큰 형 생각도 나고 안타까웠죠."

◇ 군부대 주둔지 '함덕'…아동·노인 가리지 않고 학살

4.3 당시 함덕리는 제주에서도 비교적 큰 해변 마을이었다. 함덕지서와 함께 1948년 11월부터 9연대의 1개 대대가 함덕국민학교에 주둔하면서 제주 동부 지역의 무장대 토벌 근거지가 됐다.

이 때문에 김씨의 큰형처럼 함덕리민 뿐만 아니라 선흘, 대흘, 교래 등 중산간 주민들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일상적으로 처형됐다. 이들 중에는 아동, 노인 등도 상당수 포함돼 군경이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학살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1948년 5월 무장대가 현재는 공터로 변한 함덕지서를 습격해 경찰 6명을 죽이고, 11월 조천리 면사무소를 불태운 터라 젊은 사람이라면 무장대로 보고 끌고 가 모래사장 곳곳에서 즉결 처형했다.

4.3 당시엔 모래언덕이었던 관됫모살이 현재는 주택가로 변해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이날 만난 한문용(70)씨의 할아버지 한백흥(당시 52세)씨 역시 마을 청년이 군경에게 죄 없이 끌려가자, 말리는 과정에서 함께 총살됐다. 4.3 당시 모래언덕이었지만, 지금은 주택가로 변한 '관됫모살'에서였다.

"1948년 12월 1일 산에서 말과 소를 키우던 청년 6명을 군인들이 무장대로 오인해서 끌고 갔어요. 마을 초대 이장이었던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마을 유지분과 함께 말리다가 빨갱이로 몰려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가 총살된 이후 한씨의 아버지도 1950년 8월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총살돼 묻혔다. 현재까지도 시신을 수습 못 했다.

"마을 유지였던 우리 집안이 4.3을 겪으면서 가세가 기울었어요. 저도 육군사관학교까지 합격했는데, 연좌제로 불합격 처리되고…." 한씨는 한이 맺힌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문용(70)씨가 4.3의인인 할아버지가 총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은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 학살터는 관광명소로…4.3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어

4.3 당시 모래사장과 모래언덕이 광범위하게 덮여 있었던 현 함덕해수욕장은 1980년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변해갔다.

마을 주민과 중산간 주민의 학살 터였던 백사장 주위로 근사한 카페 거리가 들어섰고, 여름이면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열리는 페스티벌 장소로 변했다.

중산간 도피자 가족 20여 명이 숨어 있다가 총살당한 진동산은 야영장이 됐고, 군경을 피해 숨어살던 중산간 피난민들이 처형됐던 해안엔 호텔들이 들어섰다.

4.3 당시 모래사장이었던 곳엔 카페거리와 식당가가 들어서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그러나 4.3 이후 화려하게 변한 함덕해수욕장 어느 곳에서도 4.3의 비극을 알리는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 안내판만 심심찮게 눈에 띌 뿐이었다.

유가족들도 취재진과 인터뷰를 마치며 "기억하지 않으면 비극은 되풀이된다"며 현재 4.3안내판조차 없는 함덕해수욕장의 현주소를 안타까워 했다.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함덕해수욕장. 71년 전 누군가의 아들, 어머니,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곳임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 제주 4.3 당시 수많은 사람이 군경의 총칼 앞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 땅 곳곳이 이들의 무덤으로 변했습니다. 현재 관광지로 변한 그 무덤엔 4.3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제주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지만, 71년 전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CBS노컷뉴스는 매주 한차례씩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4.3 학살터를 소개하며 4.3의 비극을 기억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4.3 당시 마을 주민과 중산간 주민이 일상적으로 총살됐던 함덕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오늘도 어머니 유해 위로 비행기 뜨고 내린다
② 피로 물들었던 모래사장 지금은 제주 관광명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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