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윤창원기자)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항명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판사출신으로 직무배제를 당한 공정위 유선주 심판관리관이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14일 알려졌다.
유 관리관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2월 유한킴벌리의 담합 사건 처리 과정에서 '봐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또, 이런 사실을 김 위원장에게 보고하자 이후 직무배제 결정이 내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관리관은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직무배제 결정으로 헌법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장에서는 자신이 주도한 '공정위 회의록 지침' 때문에 부당하게 직무배제 조치를 당했다며 공개적으로 밝혀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심판관리관 업무정지를 한 것은 갑질 신고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서 일시적이고 잠정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당혹감이 역력한 모습이다.
◇유한킴벌리 사건 '리니언시 악용' 대표 사례공정위는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리니언시가 접수되고 감면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과징금 등 행정제재 뿐만 아니라 고발도 면제되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한킴벌리를 봐주기 위하여 일부러 시효를 도과시켜 고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담합사건에 연루된 대기업을 봐줬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며, 이 사건 처리의 부당함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 또한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같은 해명은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공정위의 설명대로 '리니언시'라는 합법적 제도를 기반으로 했더라도 해당 조치가 부당한 조치였다는 인식을 지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는 지난 2005년부터 10년간 공공입찰에서 대리점과 함께 담합행위를 벌여 75억여원 규모의 입찰을 따냈지만, 2014년 이같은 담합행위를 자진 신고해 최종적으로 지난해 2월 과징금 2억 1천여만원을 면제받았다.
대신 '을'의 입장인 대리점들은 담합행위인지 여부조차 모른 상태에서 유한킴벌리 본사의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수천만원 씩의 과징금을 받아 당시 '갑의 배신'이라 불리며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사진=연합뉴스)
◇사건 늦장 처리도 고질적인 문제유 관리관이 주장한 또 다른 면은 공정위의 늦장 조사, 그리고 처분이다. 그는 공정위가 지난 2014년 자진신고를 받고도 3년여가 지난 뒤에야 현장조사를 벌이는 등 고의로 조사와 처분을 미뤘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지난 2010년과 201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담합행위의 경우 공소시효 5년이 지난 뒤여서 처분이 내려진 지난해 2월에는 이미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
이같은 공정위의 늦장 조사와 처분 역시 리니언시 제도와 마찬가지로 공정위의 고질적인 문제로 그동안 숱하게 지적돼왔다.
실제로 지난 2014년부터 지난 9월말까지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으로 검찰에 고발 요청한 282건 가운데 공소시효를 6개월 이하로 남겨놓고 고발한 사건이 전체의 23.8%인 67건에 달했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의 경우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된 수사를 벌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일부러 고발 시한을 늦춰 대기업 봐주기를 한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유한킴벌리 사건도 마찬가지로 자진신고 이후 처분이 내려지기까지 3년이 넘게 걸리면서 자연스럽게 공효시효가 지난 사건이 대부분이라 처벌이 약해지고, 그 마저도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면제받게 됐다.
여기다 이후 공정위 퇴직자들의 재취업 비리에 연루돼 유한킴벌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는 점에서 유 관리관의 주장은 공정위의 몇줄짜리 해명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합리적인 의심'으로 보인다.
◇이번 기회에 공정위 내부 부조리 돌아봐야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재벌개혁 관련 운동을 벌이며 '재벌저격수', 혹은 '재벌저승사자'로 불린 김 위원장이 대기업 봐주기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된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자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유 관리관이 주장한 것처럼 김 위원장이 고의로, 또는 암묵적으로 대기업 봐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만큼 '김상조號'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정권에서 공정위는 경제검찰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정권의 입김에 휘둘리거나 자청해 휘둘림을 당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부실.봐주기 조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삼성SDI 주식매각 축소 사건 △ 원·달러 환율을 담합한 8개 면세점 솜방망이 처분 △ 4대강 담합 관련 8개 건설사 미고발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김 위원장 취임 이후 정권의 입맛에 맞춘 이같은 '대놓고' 봐주기 사건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유한킴벌리 사건처럼 공정위의 과도한 권한, 그리고 조직과 법률상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불공정한 사건처리가 몇몇 눈에 띌 뿐이다.
김 위원장과 공정위가 유 관리관의 주장을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개울물을 흐리는 일'로 치부하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숨가쁘게 달려온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보고 공정위 내부에 숨겨져 있는 부조리는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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