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농단과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며 치열한 법리 공방을 예고했다.
직권을 남용하지도 않았고 후배 판사들이 의무없는 일을 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통해 혐의를 탄핵하려는 '법기술자'로서 면모를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검찰소환 조사 당시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개입과 특정 성향의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지시‧보고받은 기억이 없거나 실무를 맡은 법관들이 알아서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 측 역시 자신의 재판에서 사법농단 연루의혹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 직무 범위에 해당되지 않고 후배 법관들이 의무없는 일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적용된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따라서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모두 '직권의 남용', '의무없는 일', '권리행사 방해'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의 구성요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좁은 해석을 내놓으면서 두 사람의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사찰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무죄를, 공직자를 뒷조사한 혐의로 기소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에게 일부 무죄를 각각 선고했다.
부당한 지시를 명시적인 것은 물론 묵시적으로도 승인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고 관계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법원행정처의 사무를 관장하고, 차장은 처장을 보좌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대법원의 법원사무관리규칙을 보면, 대법원 내 문서는 수신자에게 도달되면 효력이 발생하고 서명에 의한 결재로 성립한다.
이에 따라 검찰이 100여명에 달하는 사법농단 의혹 관계자 소환조사를 통해 확보한 진술과 압수수색 등으로 수집한 증거를 모두 탄핵하기 전까지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혐의를 부인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게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강요죄'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적용된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강요죄의 핵심은 '폭행' 또는 '협박'의 존재 유무다.
실제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뜻",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진다" 등 CJ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한 혐의로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강요죄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또다른 차이는 미수범의 처벌 유무다. 조 전 경제수석의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처벌됐다.
하지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미수범 처벌조항은 없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지만 당시 검찰이 해양경찰을 압수수색한 탓에 미수에 그쳤고 해당 혐의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