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왼쪽부터), 이병호, 남재준 전 국정원장.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국가정보원장의 회계법상 지위를 두고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특가법의 적용 여부가 갈려, 이후 대법원 판결에 이목이 쏠린다.
서울고법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문고리 3인방'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이 국가회계법에서 규정하는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고 1심과 같이 판단했다.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특별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방조죄가 성립할 수 있다. 국고손실죄는 횡령한 자가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단순 횡령죄가 전용돼 형이 감경된다.
재판부는 "관련법에서 중앙관서의 장 등을 명시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업무의 실질에 있어 회계관계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정원 특활비 집행계획서에는 원장의 결재란이 있고 실제 결제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활비 일부에 대해 국정원장은 집행을 지시하거나 승인하는 방법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재판부는 같은 사건을 두고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 형사3부(조영철 부장판사)는 특가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항소심 재판에서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로 본 1심을 뒤집고 단순 횡령죄만 적용했다.
이때문에 전 국정원장들의 형량이 1년씩 대폭 줄었다.
당시 재판부가 "1심이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해 잘못 판단한 것"이라며 "국정원장은 감독하는 역할을 할 뿐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면서다.
국정원장의 회계 관련 책임 범위를 두고 재판부들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향후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전망이다.
한편 이날 재판부가 전직 청와대 비서관 항소심에서 특활비 일부를 뇌물로 판단한 점에도 주목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전직 국정원장으로부터 받은 특활비 36억5000만원 중 2016년 9월 수수한 2억원을 뇌물로 봤다. 특활비를 뇌물로 규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2억은 매월 정기적으로 상납된 다른 돈과 달리 '추석선물'로 전달돼 뇌물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향후 진행되는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앞서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