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사회적 인식의 높은 벽 앞에서 수없이 좌절의 순간을 겪는다. 가장 큰 절망이 자녀의 장애를 알게 됐을 때라면,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서있는 것과 같은 막막함을 느낀다고 한다. 성인이 되는 순간 갈 데 없이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유독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유다.
복지 선진국 유럽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기에 장애인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2015년에 ‘독일과 스위스의 농업중심 장애인 교육, 직업, 공동체 기관연수’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그들이 가진 저력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달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유럽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일자리. 사진=최미영 실장
◇ 하나. 장애 특성별 맞춤형 환경 마련
“이곳에서는 모든 장애인이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첫날 하일브룬 보호작업장(Beschuetzende Werkstätte von Heilbrunn)에서 만난 공장장의 설명이다. 2년의 직업훈련 과정을 거친다는 말도 덧붙였다. 훈련 후 작업에 배치되지 못한 이가 몇 명인지 묻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적의 배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장애는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에요. 그로 인해 생산력이 낮아도 그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성과에 상관없이 그 노력(노동)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작업장에 있는 것만도 노동이나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는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직업훈련을 마친 후에도 업무에 배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취업 가부가 일반인의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일했을 때 비장애직원이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장애특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척도로 한다. 이 지점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독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애인 정책의 기반에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있다. 장애인을 낮 동안 보호(care)하는 사회적 비용보다 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패턴이 형성되어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효과다.
편마비 장애인을 위한 장비 마련(좌). 사진과 장난감으로 꾸민 작업대(우). 사진=최미영 실장
대부분의 독일 작업장들은 각자의 신체적 · 인지적 조건에 맞게 장비를 개발하고 작업과정을 세분화해 각자에게 최적의 업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저울의 숫자를 읽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적정한 물건 양을 올려놓으면 녹색등이 켜지는 저울을 제공하고, 소리에 민감한 장애인에게는 헤드셋을 지원한다. 목공작업을 하는 장애인에게는 크기나 길이를 쉽게 측정할 수 있도록 기계에 일정한 틀이나 보조장치를 설치해줬다. 한 손만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그에 맞는 장비를, 심리적으로 불안한 장애인의 작업대는 장난감과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독일의 보호작업장들은 장애인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특성에 맞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 각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회사의 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곳이 그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일터였다.
◇ 둘. 다양한 업무 개발로 각자의 역할 부여독일과 스위스의 장애인 농업공동체에서 만난 발달장애인들은 대체로 대근육(신체의 목, 팔, 다리 등 사지와 관련한 근육)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농산물이 주 생산품이었지만 상품라벨 제작, 포장, 판매, 청소, 서비스, 사무 등 업무의 종류는 다양했다.
독일 리베나우 발달장애인 작업 모습. 사진=최미영 실장
각자의 흥미와 특성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정부는 치유농업이나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농업활동 뿐 아니라 교육, 치료, 서비스,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들을 지원했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농장은 치유농업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치유농업이란, ‘치유를 제공하기 위한 농업의 활용(using farming to provide care)’을 의미하는 것으로 2000년대에 유럽의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유럽 전역에 3,000여개 이상의 치유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healing)는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있어 자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치유를 위한 농업의 효과는 매우 높다.
발달장애인의 치유를 위한 농업, 스마트팜. 사진=최미영 실장
스위스 후마누스하우스(Humanus-Haus) 농장의 운영팀장은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과격한 행동들을 우리가 생각하는 공격성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은 억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든 에너지를 모을 때가 있고, 발산할 때가 있어요. 다만 발달장애인들은 말이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미숙하기 때문에 왜곡되어 발산하는 것이죠. 그런 경우 그들이 처한 환경을 우선 점검해봐야 합니다. 자연친화적 환경에서의 농업활동은 발달장애인들이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일자리 복지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죠.”
우리나라에서도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는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정부의 지원정책이나 국민의 인식 등 아직 숙제가 많다.
발달장애인이 생산한 작물을 판매하는 공간. 사진=최미영 실장
기존에는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 실질적인 경제활동이 아닌 소일거리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능력과 특성에 상관없이 주어진 업무도 한정돼 있어 다양한 활동의 가능성이 배제된 환경이다.
푸르메재단이 추진하는 푸르메스마트팜은 발달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현장이 될 것이다.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필요한 작물을 제공하고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