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조작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무죄 취지의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김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망을 통해 공개 비판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최근 법원행정처 전산 서버 압수수색에서 김 부장판사가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 당시 소속 재판연구원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확보해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김 부장판사가 2015년 11월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 재판연구원과 이메일을 통해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문 초안을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재판 진행을 통해 심증이 형성되면 주심 판사가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고, 재판장 등 모두 3명의 판사가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일반적인 절차와 전혀 다른 모양새다.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의 주심이었던 최모 판사는 최근 검찰조사에서 "김 부장판사가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해 갈등을 빚다 인사조치를 요청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의 재판에 대해 양승태 사법부의 개입이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 재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박근혜 정권 청와대와 교감을 나눈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김 부장판사는 또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석방시켰다. 재판 중에는 '손자병법'을 인용해 국정원의 댓글부대 운용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인 용병술'에 비유하는 발언도 했다.
특히 1년 7개월 동안 재판을 진행했지만 자신의 인사이동 전까지 선고를 내리지 않아 재판지연 의혹을 받기도 했다. 재판장이 바뀐 뒤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은 6개월 만에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에 외부 개입은 전혀 없었고, 재판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입장문을 통해 "재판부 외부의 직권남용 의혹 행위가 제가 담당한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친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기환송 사건은 항소심 판결과 다른 관점에서 관련 쟁점을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업무"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쟁점에 대해 심리하는 것도 통상적인 업무"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을 통해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법하다는 게 김 부장판사 주장이다.
하지만 박노수 전주지법 남원지원장이 "현재 수사 중인 사안 관련자가 법원 구성원들을 상대로 일방적 주장을 미리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김 부장판사의 행동은 법원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박 지원장은 특히 "법원 구성원 중에는 장차 이 사안 재판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며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