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운현 국무총리 비서실장 페이스북
5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한 정운현(59) 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SNS를 통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신을 등용하는 과정을 공개했다.
-"정 형, 제 길동무가 좀 돼주세요"정 비서실장은 새벽 5시까지 집필 작업에 매진하느라 오전에 걸려왔던 이 총리의 전화를 두 차례나 놓쳤다고 말했다.
정오가 넘어서야 일어난 정 비서실장은 세수를 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 총리는 "점심을 같이 할까 했는데 그건 이미 틀렸고, 내일 제 사무실로 좀 나오시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정 비서실장은 이튿날 오후 5시 정부 서울청사 총리실에 찾아 이 총리와 얼굴을 마주했다.
정 비서실장은 참여정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으로 최근에도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 등의 글을 쓰고 있어 총리가 관련 자문을 구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근황을 10여분간 전하던 찰나 이 총리는 갑자기 '길동무가 돼 달라'라며 운을 뗐다.
정 비서실장은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어디 여행이라도 가십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 총리는 "그게 아니라... 제 비서실장을 좀 맡아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정 비서실장은 사전에 언질도 없었고, 이 총리와 학연, 지연, 혈연 등 별다른 친분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날 만남도 7년 만에 모처럼 만난 자리라고 한다.
다만, 중앙일보와 오마이뉴스 등에서 근무했던 정 비서실장에게 이 총리는 언론계 선배다.
하지만 이 총리는 정 비서실장 보다 일곱 살 많아, 자신의 큰형과 동갑이라 쉽게 친할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정 비서실장이 "선배님, 이거 진짜로 두루두루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입니까?"라고 되묻자 이 총리는 "그렇소, 정치인, 관료, 심지어는 언론계 출신 인사도 두루 고려해봤소"라고 답했다.
이 총리는 "정 형은 내가 부족한 두 가지를 가진 분"이라며 따지듯 묻는 정 비서실장이 "역사에 대한 지식과 기개"를 가졌다며 추켜세웠다.
정 비서실장이 난감해하자 둘 사이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정 실장은 '일국의 총리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좀 채워달라고 부탁하는 데 한사코 거절만 할 수도 없어서' 수락했다고 한다.
이 총리는 "세상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들려 달라,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들을 챙겨 달라, 남이 잘 안하는 얘기를 들려 달라, 특히 내가 듣기 싫어할만한 소리를 많이 해 달라" 등의 주문을 했고 "그리고 가끔씩은 나랑 같이 막걸리를 마셔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정 비서실장도 "단 소리보다는 쓴 소리를 많이 하겠다. 마치 선조에게 극언조차 서슴지 않던 율곡 이이처럼 하겠다"고 말했고, 이 총리가 승낙했다고 전했다.
정 비서실장은 경남 함양 출신으로 중앙일보와 서울신문, 오마이뉴스 등에서 20여년 간 기자로 재직했으며, 참여정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총리실은 "언론인으로 취재 현장에서 다져온 경험과 사회인식을 바탕으로 소통의 품격을 한단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비서실장은 전날 대통령의 재가로 5일 0시부터 국무총리 비서실장직을 수행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