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변상욱 대기자 (김현정 앵커 대신 진행)
■ 대담 : 이종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 감독)
<시인 할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됐습니다. 지난주 전남 곡성의 작은 영화관에서 시사회도 가졌다고 합니다. 시인 할매, 제목에서 감이 좀 오시죠? 할매들이 주인공이신 것 같고 모두들 시인이신 듯합니다. 갓 한글을 배운 할머님들의 삶과 시를 담은 영화라고 합니다. 화제의 인터뷰에서 영화 시인 할매의 감독, 이종은 감독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영화 '시인할매' 스틸 컷,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 이종은> 네, 반갑습니다.
◇ 변상욱> 저도 사실 요새도 방송에서 제 목소리 들으면 되게 어색하고 손발이 오글거리고 그러거든요. 할머님들이 자기들 모습을 영화에서 봤을 때 반응은 어땠습니까?
◆ 이종은> 굉장히 쑥스러워하시죠. 창피해하시고 쑥스러워하시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즐거워하셨어요.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우리 할머니들, 어머니들은 어딘가의 전면에, 가장 앞자리에 서 보신 적이 없으신 분들이세요. 조명을 받고 살아보지 못했던 분들이시기 때문에 어떤 무대에서 인사를 하신다거나 또 스크린에서 자신들의 얼굴을 본다거나 하는 일들이 굉장히 생소하시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떨기도 하시고 수줍어도 하시는데. 그런 모습들이 좀 외람되지만 굉장히 귀엽고 또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 할매>의 주인공들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 변상욱>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보자, 생각하신 계기는 어떤 거였습니까?
◆ 이종은> 2016년도에 할머니들이 쓰신 시가 시집으로 출간이 됐었어요.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시집이 출간이 되었었는데 그래서 그 시집을 읽어보고 저는 굉장히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갓 글씨, 한글을 배우신 분들이 어떻게 이런 시를 쓰실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이 먼저 컸었고요. 두 번째는 그럼 이 시를 어떻게 쓰시게 됐을까, 누가 가르쳐 줬을까, 궁금증이 굉장히 크게 일어났기 때문에 그 부분을 알고 싶었었습니다.
◇ 변상욱> 그래서 바로 카메라를 메고 내려가신 겁니까?
◆ 이종은> 먼저 어머니들, 할머니들께 글을 가르쳐 주신 길 작은 도서관의 김선자 관장님을 수소문을 해서 연락을 드렸고요. 저희들이 허락을 먼저 구했죠, 선생님께.
◇ 변상욱> 김선자 선생님한테 일단 얘기를 하고 허락받고 그다음에 할머니들을 소개받는 과정이군요.
◆ 이종은> 그렇죠. 왜냐하면 할머니들한테는 이 김선자 관장이 처음이고요. 또 어쩌면 마지막 선생님이 되실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먼저 선생님을 통해서 할머니들을 만나뵙는 것이 좀 순서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변상욱>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신 김선자 선생님. 그러면 김 선생님이 가르치기 전까지 할머니들은 진짜 학교에 가 보지 못한 문맹이셨다 이거죠?
◆ 이종은> 그렇죠. 한 번도 학교를 가 보지 못하셨고요. 김선자 관장이 책을 정리를 할 때 할머니들께 좀 도와달라고 말씀을 드렸었나 봐요. 그랬더니 바르게 놓여져 있는 책을 거꾸로 뒤집는 걸 보시고 아, 이분들이 글을 모르시는구나 해서 글을 좀 저하고 같이 공부하시겠습니까 하고 제안을 드렸고 할머니들이 같이 공부를 하게 되신 거죠. 그게 2009년도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 변상욱> 그 연세면 어쩌면 오빠를 또는 남동생을 학교 보내기 위해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게 되었던 그런 과거가 있었을 겁니다.
◆ 이종은> 맞습니다. 바로 그거입니다.
◇ 변상욱> 시골이면, 할머니들은 연락을 어떻게든 취해서 이런 이런 사연입니다라고 했을 때 촬영해도 좋다고 허락을 하시던가요, 흔쾌히?
◆ 이종은> 그렇지 않죠. 그거 뭘 우리를 찍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웃음) 그런 말씀들은 하시는데 얼굴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싫다기보다는 일단은 좀 한 발 빼시는 느낌들이 있어서 그런 모습들이 되게 또 굉장히 또 친근하게 느껴졌었어요. 그래서 저희도 더욱 살갑게 다가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 변상욱> '뭘 찍어' 하다가 '이미 찍고 있습니다.' 하면 어, 그러면 분 좀 바르고. 이렇게 되는 모양이에요?
◆ 이종은> 그런 경우도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는 찍고 있으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그만 찍으라는 말씀이세요. '그만 찍고 옥수수 먹어.' 이제 그만 찍으라고. 계속 따라다니냐고. 그러지 말고 여기 같이 먹고 가라고. 그런 말씀들을 너무 많이 하셔가지고 찍는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더 많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정말 어머니들처럼 저희들을 대해 주셨죠.
◇ 변상욱> 외지에서 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관심을 갖고 찾아와준 젊은이들이 얼마나 참 고맙고 반가웠겠어요. 그러니까 계속 먹이고 싶어서 그랬겠죠.
◆ 이종은> 맞습니다. 그런 말씀을 또 하셨어요. 저희들이 여름, 눈 오는 날도 이렇게 찍다 보니까 저희들 보시면서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드님 생각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우리 아들도 저렇게 일을 하고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때로는 불편한 인터뷰라든가 이런 부분들도 아드님 생각하시면서 해 주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들이 저희들한테는 좀 굉장히 많이 뭉클했었죠.
◇ 변상욱> 그럼 영화의 첫 장면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 이종은> 영화의 첫 장면은 눈이 소복이 내리는 마을에서 눈을 쓰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고요. 그때 윤금순 할머니의 시, 눈이라는 시가 낭송이 됩니다. 그러면서 눈을 뜨시죠. 그 시 잠깐 소개해 드릴까요?
◇ 변상욱> 좋습니다. 한번 좀 낭송해 주시죠.
◆ 이종은>
눈
윤금순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영화 '시인할매' 스틸 컷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 변상욱> 뭉클하네요.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이렇게 짧은 시에 그렇게 많은 걸 담아낼 수 있네요.
◆ 이종은> 그렇죠. 특히 윤금순 어머님은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아픔이 서려 있는 시라고 저희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눈이 내렸을 때 모든 것을 덮어서 상처를 감춰주기도 하는 것처럼 이 시에는 어머님이 갖고 있는 상처들이 조금은 눈으로 덮여지고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런 느낌들을 받았던 굉장히 감동적인 시였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첫 부분에 저희가 편집해서 배치해 넣었죠.
◇ 변상욱> 머리나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그래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기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을 하셨을 테니. 참 정말 어떤 시적인 감성이 대단하시네요.
◆ 이종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님들 만날 때마다.
◇ 변상욱>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됐습니까?
◆ 이종은> 촬영 기간은 1년 저희가 촬영을 했습니다. 할머니들의 1년을 저희가 담고 싶었고 또 곡성. 우리나라의 한 시골 마을의 1년의 사계절을 좀 아름답게 담고 싶었던 그런 욕심이 있어서 1년을 저희가 기준으로 해서 촬영을 했었습니다.
◇ 변상욱> 감독으로서 <시인 할매="">가 주는 울림의 메시지는 이거입니다라고 간단히 설명을 해 주신다면, 압축해 주신다면 어떤 겁니까?
◆ 이종은> 영화에서 어머님들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벌로 살았다.'는 말씀이에요.
◇ 변상욱> 벌로 살았다?
◆ 이종은> '벌로 살았다.' 전라도 사투리인 것 같기는 한데요. '어려운 시절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어요?'라고 여쭤보면 한결같이 벌로 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살았다. 살았더니 살아지더라라는 말씀이셨어요. 그런데 그냥 살아졌겠습니까? 자식들 바라보면서 내 새끼들만큼은 굶기지 말아야겠다, 잘 가르쳐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견뎌내셨던 건데요.
그래서 그 마음이 영화 속에는 잘 전달됐다고 보고 영화 대사 속에서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엄마라는 말은 그냥 듣기만 해도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라는 인터뷰가 있어요, 따님의 인터뷰가. 그래서 그 말이, 엄마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뭉클한 따뜻한 품.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해 주는 그리고 또 할머니들의 인생이 저희들에게 말해 주는 울림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변상욱> 영화 개봉일자는 언제입니까?
◆ 이종은>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고요. 좋은 배급사를 찾고 있어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 변상욱> 배급사들이 서로 '나요, 나요!' 하고 달려들었으면 좋겠는데요.
◆ 이종은> 고맙습니다. (웃음)
영화 '시인할매' 스틸 컷,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영화 '시인할매' 스틸 컷, 사진=이종은 감독 제공
◇ 변상욱> 마지막으로 촬영을 협조해 주시고 출연해 주시고 돌봐주신 할머니들한테 한 말씀 하신다면요?
◆ 이종은> 할머니들이 그사이에 또 편찮으신 어머님도 계셨어요. 김점순 어머님께서 허리를 다치셔서 시사회장에도 못 나오셨는데 이제 겨울이 다가오면 길이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꼭 몸조심 하시고요. 김점순 어머니 빨리 쾌차해서 다시 마을회관에서 화투도 치시고 또 어른들과 같이 행복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김선자 관장님의 작은 도서관도 많이 열악한 환경에서 어머니들과 또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좋은 일 많이 베풀어 주시기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 변상욱> 오늘 만남 반가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종은> 감사합니다.
◇ 변상욱> 영화 시인 할매의 감독, 이종은 감독이었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