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제1차 상봉 행사 마지막날인 22일 금강산호텔에서 남측 김춘식(87) 할아버지가 북측 동생 김춘실(77) 할머니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꿈만 같았던 금강산에서의 3일은 너무도 짧았다.
22일 남북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작별 상봉 장소는 다시 눈물 바다로 변해버렸다.
남측의 어머니 한신자(89) 할머니와 북측의 딸 김경실(72)‧경영(72) 세 모녀는 얼싸 안고 오열했다. 어머니는 상봉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지만 두 딸의 손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이 다 상봉장을 나갔지만 딸 경영씨는 팔을 놓아주지 않았고, 어머니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문을 나서지 않고 버텼다.
북측 보장성원들이 와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상봉장 어디선가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테이블에 있던 가족들도 손을 맞잡고 합창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도 여기저기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북측 아들(리강선‧75)을 만난 이기순(91) 할아버지는 아들을 꼭 껴안고 웃으면서 “나 가짜 아버지 아냐. 너 아버지 있어”라고 말했고, 아들은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요. 그래야 또 만나지”라고 화답했다.
이금섬(92) 할머니는 이제 곧 헤어져야 하는 북측 아들(리광철‧71)의 얼굴을 차마 쳐다 볼 수 없어 계속 반대편만 응시했다.
남측 가족들이 타고 갈 버스에 오르자 이제 정말로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상봉장에서 끝까지 어머니의 팔을 놓지 못했던 두 딸은 버스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아이고 아이고”하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어머니 건강하시라요”라며 또다시 오열했다. 한신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창문을 두드리며 “울지 마라”고 위로했다.
최동규(84) 할아버지의 북측 여조카 박춘화(58)씨는 버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냐”고 울부짖었다.
다른 북측 가족도 “만나자 이별이니 이런 비극이 어디있나. 우리민족끼리 힘 합쳐셔 통일 빨리 이룩하고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자. 우리 남북이 만나면 되지“라고 소리쳤다.
형수와 조카를 상봉한 고호준(77) 할아버지는 북측 가족들이 차창에 붙어 손을 맞대며 계속 울자 버스에 다시 내려 부둥켜안고 “이렇게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떨어진다”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북측 여동생을 만난 김병오(88) 할아버지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다가 흰색 한복을 입은 동생에게 일부러 함박 웃음을 지었고, 양손으로 크게 하트를 그려 보였다. 여동생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오빠를 향해 손모양 하트를 그려 보여주며 “오빠 잘가요. 오빠 잘가요”라고 흐느꼈다.
남측 이관주(93) 할아버지의 북측 조카 리광필(61)씨는 버스에서는 소리가 안들려서 손바닥에 “장수 하세요”라는 글씨를 써서 보여드렸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은 당장은 갈 수 없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서로 주소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남측 이산가족과 동행가족 등 190여 명의 방문단을 태운 버스는 오후 1시 30분쯤 금강산을 출발해 동해선 육로를 통해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