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해 12월 대구 북구. 추운 새벽 쓰레기를 수거하던 60대 남성이 변을 당했다.
쓰레기 수거차량 뒷편에서 쓰레기를 옮겨 싣던 중 뒤에서 돌진하는 한 승용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하반신이 다쳤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됐다.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야간 작업에 무방비로 노출된 쓰레기 수거 노동자들.
대구 쓰레기 수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깜깜한' 그들의 일터를 조명해봤다.
#1. 쓰레기 수거업자 A씨의 하루 |
새벽 1시. 남들은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꿈나라로 갈 시간. A씨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터로 나선다.
원래 근무시간은 새벽 4시부터지만 그때 일을 시작해서는 할당량을 다 치울 수 없다.어두운 밤에 일하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온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한 아파트. 다들 잘 시간이라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쓰레기 수거차량 소음이 '웽'하고 인다.
자다 깬 몇몇 주민들이 창밖으로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작업을 멈출 순 없다.
약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쓰레기를 주워담아야하기 때문. 일이 늦어져 쓰레기를 다 못치우면 다음날 항의 전화가 잇따른다. 서둘러야 한다.
골목 골목을 돌며 주택가 쓰레기를 줍는다. 허리를 숙여 쓰레기봉지를 두 손 가득 들고 일어서는데 코앞으로 무언가 홱 지나간다. 코를 베일 뻔한 기분. 늦은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서서히 해가 밝아 오고 점점 뙤약볕이 작열한다. 이미 온 몸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풀풀 나고 옷은 땀에 흠뻑 젖었다.
오후 3시. 드디어 일이 끝났다. 동료가 말하길 다른 동네 수거를 맡은 아무개씨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통 보이지 않던 최고참 수거원은 쓰레기를 옮겨 싣던 중 사고로 숨졌다는 얘기까지.
'밤낮을 바꿔 일하니 병이 안 날 수 있나. 사고 위험은 또 오죽하고'
A씨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근길에 오른다. |
쓰레기 수거업자들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는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주요 근무시간은 밤이나 새벽.
대부분 구청들이 쓰레기 수거 시간을 새벽 3시~5시쯤 되는 이른 새벽부터 오후까지로 정해놨는데, 노동자들은 규정에 맞춰 일할 경우 자칫 쓰레기대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오전 7시부터 10시 사이는 출퇴근 차량들로 붐비기 때문에 수거가 더뎌지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2,3시간 일찍, 이른 새벽에 나와서 일해야만 시민들에게 쓰레기 없는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
(사진=자료사진)
그러나 밤 근무, 새벽 근무를 없앨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력을 확충하면 낮 동안에도 쓰레기 수거가 가능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구의 경우 용역업체를 기준으로 봤을 때 697명이 대구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수거한다. (생활폐기물과 재활용품, 음식물쓰레기 수거원을 모두 합친 수)
250만명의 쓰레기를, 697명이 치우는 꼴이니 수거원 1명이 시민 3500여명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보면 된다.
노동자들은 밤 동안 수거를 실시하는 지금도 수거원 1인당 맡은 쓰레기 양이 많아 쉴 틈이 없다고 했다.
도로가 복잡한 낮 시간 동안, 같은 인력을 투입하면 쓰레기 수거율이 더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인력을 대폭 늘리면 낮 동안에도 쓰레기를 모두 치울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초, 정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개선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는 "지역별 여건을 감안하되 새벽 작업으로 인한 피로 누적, 사고위험 해소를 위해 청소작업 시간을 주간으로 운영"하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인력 확충에 예산을 쓰지 않으려는 구청들은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과 달리 새벽에 주로 일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묵과하는 상황이다.
대구에서 재활용품 수거 업무를 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더 이상 이런 문제로 동료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환한 낮에 일하고 싶지만 지금 인력으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쓰레기 수거업자들이 '밝은 대낮에 일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시민들도 똑같다.
#2. 쓰레기 수거 소음에 잠 못드는 주민 B씨 |
잠이 든 지 3시간 만에 전쟁통을 방불케하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깼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문을 열고 자야 하는 여름마다 소음 때문에 괴롭다. 간신히 다시 잠이 들려는 찰나, 또 다시 굉음이 들린다. 아까는 생활폐기물 수거 차량, 이번에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 번갈아가면서 잠을 깨운다.
얼마 전 쓰레기 수거를 하던 노동자가 차량에 치여 숨졌다는 뉴스 기사를 봤다. 아니 이렇게 위험하고 주민들도 불편한데 도대체 왜 쓰레기 수거를 밤에 해야 하는 걸까. 구청에 수차례 항의해봤지만 바뀌는 게 없다. |
더운 여름철이면 쓰레기 수거 소음에 시달려 잠을 못잔다는 민원이 구청으로 몰려든다.
한밤 쓰레기 수거가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것.
B씨는 "구청의 탁상행정이며 주민 무시 행정"이라며 쓰레기 수거를 낮에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부분 구청들은 노동자의 요구와 주민 민원을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밤 수거로 인한 각종 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인력 그대로) 낮에 쓰레기를 수거하면 교통량이 많아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며 인력 충원 가능성은 닫아둔 채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