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체부동 궁중족발이 있던 상가. 간판은 떨어지고 창문 유리는 깨져 있었으며 점포 앞은 1t 트럭 한 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곳곳에는 출입금지 경고문과 호소문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사진=김광일 기자)
둔기 폭행 사건으로 번진 '궁중족발' 임대료 요구액이 감정가의 4배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현행법이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에서 임차인(세입자)을 지켜주지 못해 이번 갈등을 불렀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17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감정평가서를 보면,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의 월 임대료는 2016년 9월 기준 304만원이 적정했다고 한다.
이 감정은 건물주가 임차인 김모(55)씨와의 명도소송 중 법원에 신청한 뒤 재판부가 업체에 의뢰해 평가된 것이다.
(사진=서울중앙지법 재판부 의뢰를 받은 사설업체에서 작성한 감정평가서 캡처)
인상 전 임대료는 월 297만원으로 감정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월 120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김씨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다.
그렇게 시작된 갈등은 강제집행 과정에서 더욱 격화됐고, 김씨는 결국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 한복판에서 둔기를 휘둘러 이씨를 다치게 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김씨 변호인 김남주 변호사는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궁중족발 강제집행 이후 이씨가 전화해서 '너는 나한테 안 돼. 법은 내 편이고 너는 안 돼'라며 계속 조롱을 했다고 한다"며 "그날도 조롱의 전화를 받고 격분해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김광일 기자)
김씨 측과 상인단체, 시민단체 등은 이번 사건에 앞서 현행 상가임대차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상가임대차법은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최초 계약 뒤 5년까지만이어서 그 이후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5년 뒤부터는 임대료가 뛰어도 임차인이 속수무책 따르거나, 가게를 비워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 셈이다.
구속된 궁중족발 세입자 김씨의 부인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 요구(사진=상인단체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제공)
상인단체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신가람 운영위원은 "계약 2~3년차에 시작된 분쟁이 끝날쯤이면 5년차쯤 된다"며 "그때는 이미 건물주가 얼마든지 내보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임차인들은 괴로워 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상가는 손님을 데려가기도, 집기를 옮기기도 어려워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는 게 일반 주택과는 다른 개념"이라며 "보호기간을 늘리는 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는 임차인에게 계약 연장을 10년까지 보장해주는 방안도 나왔지만, 2년째 계류중이다.
구속된 궁중족발 임차인 김씨의 부인은 15일부터 매일 낮 국회 앞에서 상가임대차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