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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해놓고 "딸 같아서" 궤변 늘어놓는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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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물·음담패설·신체접촉…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성폭력
"의식적인 '가족처럼 대했다'에 숨은 무의식 실체 살펴야"
'82년생 김지영'의 비애…"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나처럼"
"어린 시절 애착결핍 탓에 친밀감과 성적 문란 행위 혼동"
"성폭력 저지르고도 구차한 변명으로 상대방에 책임전가"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한 중견 의류업체 회장이 서른살 어린 자사 매장 여성 점주(48)에게 6개월간 수십 차례 음란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자 "딸 같아서 장난친 것"이라고 변명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31일 SBS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업체 조모 회장은 "상당히 친딸 같이 내가 돌봐줬다. 아버지 같으니까 장난을 쳤다"며 음란물을 보낸 건 실수였고 성추행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조 회장이 3, 4년 전부터 해당 점주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딸 같아서"라는 납득하기 힘든 말. 어디선가 접해 본 듯한 광경이다.

앞서 지난 2014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여성 캐디 신체 일부를 손으로 수차례 접촉하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박 전 의장의 이같은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명령을 내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박 전 의장은 "손녀 같아서 귀엽다는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성추행을 해놓고 "딸 같아서" "손녀 같아서"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심리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인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1일 CBS노컷뉴스에 "무의식적인 면과 의식적인 면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가슴 등 주요 부위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 남성이 여성의 신체에 접촉해도 된다고 여겨지는 상대는 가족 밖에 없다.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거나 힘들어 하는 딸을 따뜻하게 안아줘도 무방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대를 가족처럼 여겼기 때문에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이 의식적인 면이다."

최 소장은 "그러한 (의식적인 변명을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여성과 관계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며 "결국 돈과 권력을 내세워 자기보다 어린 여성과 관계를 갖고 싶다는 무의식을 ('딸 같아서'라는 식의) 의식적인 말로 드러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 '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몇 년 후에 나처럼…당신이 계속 나를 이렇게 대하는 한'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대한민국에 발붙인 여성들의 불평등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는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이같은 현실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심장한 일화가 나온다.

'이제껏 상품 개발부서에 있다가 홍보부로 온지 석 달 정도 되었다는 부장은 홍보와 마케팅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소설은 '밤 12시가 조금 넘자 부장은 김지영 씨의 잔에 맥주를 가득 채우고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이 다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대리기사와 통화하고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고 이후 상황을 그리면서 아래와 같은 해당 부장의 이중적인 행태를 꼬집는다.

"내 딸이 요 앞 대학에 다니거든.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 집에 간다고 무서우니까 데리러 오라네. 미안한데 나는 먼저 갈 테니까, 김지영씨, 이거 다 마셔야 된다!"

이어지는 주인공 김지영의 암담한 심경은 다음과 같다. '김지영 씨는 겨우 붙잡고 있던 어떤 줄 하나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신의 그 소중한 딸도 몇 년 후에 나처럼 될지 몰라, 당신이 계속 나를 이렇게 대하는 한.'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명예교수는 "대개 음란물이나 음담패설을 건네는 식으로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그것을 즐길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갖는다. 기회가 되면 다음 단계로서 신체 접촉 등을 할 의향을 품은 경우가 많다"며 분석을 이어갔다.

"성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보면, 어린 시절 안정애착이 안 된 탓에 상대방 경계를 성적으로 침범하는 행동을 통해 결핍된 정서적인 친밀감을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딸 같아서'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역시 성적인 문란 행위와 애착을 혼동하는 데 따른 무의식의 발현이다."

채 교수는 "결국 정서적인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성을 자극하려는 것"이라며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기 생각이나 관념에만 빠져 있을 뿐, 그로 인해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어 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능력이 거의 없다"고 부연했다.

이어 "현장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을 다수 상담해 왔는데, 그들은 어린 시절 안정애착의 결핍으로 인한 본인의 일탈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며 "이러한 욕구가 빙산의 일각처럼 내면적으로 작동하니, 성적인 일탈 행동으로 옮겨 놓고도 구차한 변명을 통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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