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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실물 쇼크'…"숙제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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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전문가 최종희, 김 위원장 언행 분석…"정권 안보용 정보 한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깜짝 제안으로 잠시 북측으로 월경한 뒤 함께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방북 전 정보기관에서는 김정일이 '미친 변태'(crazy and pervert)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전혀 미치지 않았다."

지난 2000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일(1942~2011)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미국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2012년 가진 한 대담에서 꺼낸 회고다. 당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오랜 시간 미사일 사거리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결과 김정일은 매우 똑똑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행을 보고 들은 내외신 기자들 반응 역시 올브라이트 전 장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어와생각연구소' 최종희 공동대표는 "이번 회담을 접한 모든 외신 기사들의 공통점은 그동안 김정은을 과소평가해 왔다는 고백서나 다름없었다"고 평했다.

저서 '박근혜의 말'(2016·원더박스)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법을 해부해 화제를 모았던 최 대표는 2일 CBS노컷뉴스에 "모 기관 의뢰를 받아 몇 달간 김정은의 언어를 분석한 일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분석 결과는 일반에 알려진 정보와는 전혀 달랐다. 그간 남측에서 이야기돼 온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마치 예전에 CIA(미국 중앙정보국)가 김정일에 대해 괴팍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대내용으로 갈무리했던 정보요약과 똑같다."

결국 "지금까지 모든 정권에서 '국가' 안보용이 아니라, '정권' 안보용으로 모으고 유포했던 '세뇌용' 대북 정보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났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최 대표는 그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최종희의 생각 변전소'에서 김 위원장을 종종 다루면서, 그의 언행을 실제로 접하면 놀랄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은의 언행은 (모 기관 의뢰로 벌였던) 당시 제 관찰의 연장선이었다"며 "김정은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고 세심하고 논리적이고 총명한 지도자"라는 분석을 내놨다.

앞서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북측을 통해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평창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 평창의 고속열차가 좋다고 하더라. 남에서 이렇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를 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시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판문점=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를 두고 최 대표는 "사실 민망하다는 식의 표현은 어지간해서는 보통 사람들도 선뜻 고백용으로 쓰기 어렵다"며 "김정은은 스스로 창피할 수 있는 말까지 솔직하게 하면서 프레임을 깨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리거나 하지 않은 채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되레 꾸밈 없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남겼다"는 이야기다.

"문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호칭도 눈에 띄었다. 문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건배사를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숙 여사님께 감사드리며…'라고 '님'자를 붙였다. 원고를 읽어내려 가다가 이 부분에서 멈칫하는 것으로 봤을 때 그것은 즉흥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 대해 '솔직 담백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했다."

◇ "김정은 쇼크…자유로운 사고 억압해 온 '프레임' 깰 기회"

"이번 기회에 김정은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대내용으로 갈무리한 엉터리 보고서 종류의 평가, 정권 안보용으로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비하하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 대표가 지난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남북정상회담 관련 글의 일부다. 그는 "그것이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토대 마련을 위한 자갈 쌓기의 하나"라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에 대한 지식인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최 대표는 "김정은에 대한 나의 발언을 두고 '친북'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분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은의 실제 언행을 접한 뒤, '전해 듣던 김정은이 아니'라는 데 충격을 받은 우리에게는 과제가 생겼다. 그간 북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이나 연구마저도 '친북' '종북' 낙인을 붙여 온 사회·정치·문화적 체계의 대전환이다."

그는 "우리는 북측과 그 지도자의 실체가 어떠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권 안보에 혈안이 된 시스템의 압박을 받아 왔다"며 "즉, '프레임'에 억눌려 지내 온 것이다. 이를 깰 수 있는 개인과 사회의 인식 체계 전환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사고(思考)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랜 기간 분단과 독재가 강요한 프레임 탓에 자유로운 사고를 빼앗겼다. 이를 극복하려면 개인은 물론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마치 달에 발을 딛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인식의 도약 단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김정은 쇼크를 그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최 대표는 "일각에서는 김정은 쇼크에 대해 '깜짝 놀랐다' '오판했다'는 표면적인 반응으로만 끝내려는 경향이 짙다"며 "흔히 '프레임이 사고를 결정한다'고 하잖나. 그동안 우리네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해 온 일그러진 프레임 자체를 깨는 기회로 '김정은 쇼크'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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