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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왜 박정희는 넣고 전두환은 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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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전문' 변천사로 본 4·19 수난기…치열했던 '민주화 운동' 대장정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왼쪽)과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해 발표하는 전두환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사진=자료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은 올해로 58주년을 맞는 동안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포함됐다가 빠진 뒤 다시 들어가는 수난을 겪었다. 헌법 전문이 한 나라의 역사적·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는 만큼, 4·19혁명이 겪은 이러한 부침에는 한국 사회 민주화의 치열했던 여정이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다.

무소불위 독재권력으로 부정선거 등을 일삼던 이승만 정권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 수만명이 1960년 4월 19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와중에 성난 군중 수천명은 130여명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경무대(현 청와대)로 향했다. 혁명의 열기는 급기야 그해 4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위시한 군부가 벌인 쿠데타로 혁명의 기운은 사그라든다.

헌법 전문이 바뀌어 온 맥락을 살펴보면, 4·19혁명은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던 박정희 체제에서 5·16과 함께 전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박정희 사후인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에 의해 4·19혁명은 전문에서 삭제됐다. 이후 전두환 체제를 무너뜨린 1987년 6·10항쟁이 낳은 지금의 헌법 전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4·19혁명과 관련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보다 구체적인 변천사는 아래와 같다.

#1. [1948년 제헌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2. [1962년 5차 개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3. [1980년 8차 개헌]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4. [1987년 9차 개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헌법학자인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사적 사건들은 헌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러한 사건의 의미가 헌법 전문에 포함된 것"이라며 "1962년 개정 헌법에서 4·19가 5·16과 함께 들어간 데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 헌법 전문에 아로새긴 '민주주의'…헌정 파괴 세력에 맞서 온 투쟁의 역사

1960년 4·19혁명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위)과 탱크를 몰고 도심에 들어온 계엄군(사진=4·19혁명기념도서관 제공)

 

헌법 전문은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흘려 온 우리네 피땀의 현대사를 방증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결국 헌법 전문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가치의 척도를 드러내는 셈이다.

헌법학자인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정권은 당연히 4·19와 같은 민주혁명을 헌법 전문에 올리려 했다"며 "그렇지 않고 군부 쿠데타나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세력들은 이러한 민주혁명을 꺼릴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헌법 전문에서 삭제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5·16군사쿠데타로 4·19혁명 열기를 꺾고 들어선 박정희 정권이, 오히려 4·19를 헌법 전문에 넣은 것은 아이러니하게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는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4·19를 계승한 것이 5·16'이라고 표방하고 나섰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4·19를 '의거'로 격하시키고 5·16을 '혁명'으로 규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두환의 경우 헌법 전문에서 4·19는 물론 5·16도 삭제했다. 실제로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세력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박정희의 자취까지 모조리 지운 것"이라며 "1987년 6·10항쟁의 결과물인 지금의 헌법은 4·19혁명을 다시 넣음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을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현행 헌법이 30년을 넘김에 따라 변화해 온 시대에 걸맞은 모습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개헌 논의가 정쟁에 발목 잡힌 상황에서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이 개헌안 전문에는 4·19혁명 이후 한국 사회 민주화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이 추가됐다.

김외숙(오른쪽) 법제처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에게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방승주 교수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 전문에 포함된 역사적 사건들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항쟁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며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새 정부 차원에서는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정권들을 갈아치운 역사적 사건들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홍구 교수는 "우리는 헌법을 파괴하려는 세력과 싸워 헌법을 지켜낸 각별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지녔다"며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누가 한법을 파괴하려 했고, 누가 헌법을 지켜 왔는가를 헌법에 어떠한 형태로든 일정하게 반영해야 한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헌법 전문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다만, 역사적 사건들을 일일이 헌법 전문에 열거하는 데 있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교수는 "물론 장단점이 있겠으나, 헌법 전문에 개별 사건들을 모두 나열할 것인지는 조금 더 논의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부마항쟁을 포함시키느냐로 논란이 됐는데, 우리가 치열하게 싸워 왔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지만 (헌법 전문에 포함되는 역사적 사건이) 너무 많아진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판단할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항해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대학생·시민들이 일으켰던 민주화 운동이다. 그해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 당한 사건과도 연결됨으로써, 유신 체제를 붕괴시킨 기폭제로 평가받는다.

방 교수는 "모두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십분 이해하지만, 이를 모두 집어넣게 되면 헌법 전문이 몹시 산만해지는 경향도 있다"며 5·18과 6·10항쟁은 그 역사적 가치가 충분히 검증돼 큰 이견이 없지만, 부마항쟁의 경우 지역에 국한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논쟁거리"라고 봤다.

그는 "헌법 전문에 넣을 역사적인 사건은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영향을 끼친 민주화 운동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차별화 기준을 감안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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