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은 여론일까요? 댓글에 여론이 흔들리기도 할까요? 드루킹 파문에 댓글 폐지론까지 등장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들은 "드루킹 일당이 포털 뉴스에 댓글을 달고 이를 공감 수가 높은 베스트 댓글로 만들어 여론을 조작, 왜곡했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많은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은 논리적이지 않은 내용이라도 독자의 생각이나 여론에 강하게 영향력을 미친다는 이유에섭니다.
이에 포털 댓글 폐지론과 댓글 실명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드루킹 사건의 근원지가 된 네이버가, 여론을 조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댓글 조작을 방치했다면서 '네이버 폐쇄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보안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네이버가 영향력에 걸맞은 보안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나, 사안을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문제를 극단적인 상황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여론 조작이라는 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상업적인 마케팅 영역에서, 특히 정치 분야에서 말이죠. 여론 조사라는 것도 설문 대상과 질문, 선택지에 따라 얼마든지 그 결과가 바뀐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도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이같은 여론 조사 결과를 들고 선전에 나섭니다. 이때문에 드루킹 사건으로 한 달 넘게 지리한 공방이 펼쳐지는 일련의 사태는 모두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 선거를 앞둔 여론전"이라는 게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 댓글 작성, 전체 사용자 中 1%도 안돼…"댓글이 곧 여론이라 볼 수 없어"그렇다면, 댓글은 정말 여론일까요? 댓글을 조작하면 여론도 조작되는 걸까요?
인터넷 댓글 분석 사이트 '워드미터'에 따르면 주요 포털 사이트 네이버 뉴스에는 (7일 기준) 11만 333명이 25만 9511 개의 댓글을 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네이버 뉴스 하루 평균 이용자(1300만 명)의 약 0.9%에 불과합니다.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다는 걸 '여론'이라 부르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댓글을 보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결국 조그만 찻잔 안에서 휘젓기 놀이하면서 찻잔 밖의 세계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이는 과대망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댓글의 영향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댓글=여론'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 댓글이 태도를 바꾼다기보단 "기존의 태도나 가치, 신념 등을 더욱 강화하는 일종의 심리적인 보강장치로서 효과가 있다"는 '편향적 선택지각'이라는 사회심리학 이론을 들었는데요,
이는 사람들이 수많은 댓글을 볼 때 나와 같은 생각의 댓글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고, 반대되는 생각은 무시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댓글을 보고 감동해서 태도가 바뀌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입증됐다고 합니다.
◇ '다수 여론'이 강하면 '침묵'…소수 의견 사라져 더욱 극단적으로 '이동'다만, 황 교수는 "댓글이 개인의 판단에 영향력을 줄 수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특정 사안에 뚜렷한 의견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좀 더 효과를 발휘하는데요. 이때 '어떤 게 다수 여론인지'를 인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악대차(band wagon)'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우르르 쫓아가듯이 주류의 견해를 따라가는 현상(밴드왜건/편승효과)이 그 예로, 주로 정치 분야에서 '우세하다고 가늠되는 후보 쪽으로 유권자들의 표가 집중될 때 많이 쓰입니다.
토론할 때 특정 의견이 다수에게 인정받거나, 내부에서 강한 의견이 형성되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침묵의 나선 이론)해 소수 의견이 사라지는 경우도 나타나는데, 드루킹 일당의 전략이 바로 이같은 심리를 노린 겁니다.
공감수가 많은 이른바 '베스트댓글'을 선점, 다수의 여론처럼 보이게 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착각하게 했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베댓'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이들의 의견 표명 활동이 위축됩니다. 이렇게 소수의 의견이 침묵하면 댓글은 더욱 극단적으로 이동해 '집단 극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여론 공간 안에서 다수 의견이 선점되는 것은 캠페인 전략에서 굉장한 효과가 있고, 이를 조작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법적인 행동이라며 경계를 당부합니다.
◇ 쏟아지는 드루킹 방지 대책, 효과는?…아웃링크 "신중해야", 최신순 정렬 "매크로는 진화"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해법들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나온 대책으로는 뉴스 제목을 클릭하면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되는 △ 아웃링크(outlink) 의무화 △ 댓글 최신순 정렬 △ 포털 댓글 폐지 △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이 있습니다.
아웃링크는 구글 첫 화면에 검색창 하나만 있는 것처럼 포털은 '검색'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뉴스는 구글처럼 언론사 안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뉴스가 여러 언론사로 분산돼 드루킹 같은 여론 조작은 불가능하고 포털 역시 댓글 조작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이용자 불편이 야기됩니다. 그간 포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뉴스를 보는 데 익숙해져 있던 소비자 입장에선 개별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해 기사를 봐야 하고, 댓글을 달려면 일일이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습니다.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이나 광고, 또 낚시성 광고성 기사는 독자들이 뉴스에 염증을 느끼게 만들 것이란 우려도 제기됩니다.
언론사 이념에 따른 댓글 차단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언론사 입장에 상치되거나 비판적인 댓글은 네이버가 운영중인 '접기 방식'을 이용해, 공중 노출을 차단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념 지향적 기사로 정파적 뉴스의 편중 현상이 심해질 수 있고 이는 뉴스 소비의 파편화로 이어져 공론의 장으로서 언론사 기능은 상실될 소지가 크다"는 거죠.
댓글 정렬 기준을 현재 순공감순 등 5가지 방식으로 하던 것에서 '최신순' '과거순'에 따라서만 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매크로를 끊임없이 돌려 특정 내용의 댓글이 계속 노출되도록 하는 등 우회 방식이 존재합니다.
안 수석위원은 "시간순으로 정렬하되, 유사한 댓글이 짧은 시간 내에 연속해 다량으로 게시되지 못하도록 포털에서 댓글 조작 시도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댓글 폐지·실명제는 '주객전도'…개방과 참여의 가치로 성장한 인터넷 보편적 가치 훼손인터넷 댓글 폐지와 실명제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우려도 상당합니다. 모든 해킹을 막을 수 없듯 모든 매크로를 막기 힘든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들은 젖혀두고 댓글 조작을 알고도 방조했다거나, '개방성'을 기반해 형성된 인터넷 생태계에서 댓글 폐지나 실명제 주장은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황 교수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산소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듯, 모두가 완벽히 정화된 물만 마시는 게 아니듯 사회 여론이라는 건 노이즈와 무질서가 병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은 반드시 막아야 하지만, 부작용을 막겠다고 개방과 참여, 공유의 가치로 성장한 인터넷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무작정 막기만 해서는 어디로든 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풍선효과가 100%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안 수석위원 역시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가 우려돼 약 6년 전 이미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재론할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 "인터넷상에 글을 올린다는 이유만으로 그 내용과 관계없이 신원공개의무를 강제로 부과한다면 사생활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실명제로 축적된 개인정보는 항상 유출될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편의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이같은 부작용도 언제나 초래합니다. '개방적, 분산적'으로 설계된 인터넷 역시 해킹에 대한 취약점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더구나 한국에서 네이버는 '습관'이 된 네이버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인터넷 사업자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조작 행위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끊임없이 대응해야만 네이버 스스로도 불신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