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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걸쳐 "주한미군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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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김일성 주석, 1991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서 '핵을 지렛대로 대미관계 정상화 전략' 결정
- 1992년 1월 김용순 국제담당 비서, 뉴욕서 "북미수교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 요구하지 않을 것"
- 1996년 북한 아·태평화위 "미군의 한반도 평화유지 역할 수행 반대안해"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걸쳐 '체제안전 보장 조건으로 주한미군 주둔 용인' 일관된 입장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취재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기고문을 놓고 때 아닌 주한미군철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주한미군철수론이 제기되고 있다며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보수진영의 논리는 복잡하게 보이지만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의 요구이고, 여기에 우리 정부가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자 정작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통치하던 지난 1992년 초부터 이미 주한미군의 남한 주둔을 용인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는 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일관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북한연구학회보에 게재된 '냉전의 종식과 북한의 안보전략변화'(김연수)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1991년 12월 24일 김일성 주석의 사회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핵을 지렛대로 대미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전략을 선택했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북한 내 강경파들은 한미일의 호전세력들이 호시탐탐 북한 붕괴를 꾀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반대했고, 당시 김용순 국제담당비서를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자들은 경제붕괴를 피하려면 한미일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 밖에 없다며 "핵을 지렛대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한번 시도해보자"고 주장했다.

여기서 김일성은 실용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전원회의 직후인 1992년 1월 22일 김용순 비서는 미국을 방문해 뉴욕 유엔주재 미국 대표부에서 아놀드 캔터 차관과 북미간 최초의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김용순 비서는 이 자리에서 "북미수교를 해주면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하지 않겠다. 통일 후에도 미군은 남한 또는 조선반도에 주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당시 북한이 주한미군의 주둔까지 용인하고 나선 것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독일이 통일되고 동유럽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로 보인다.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은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도 체제 유지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김용순을 보내 미군 주둔과 체제 인정을 놓고 미국과 직접 거래를 하려했다"며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무시를 당하자 그때부터 본격적인 핵 카드를 준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가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설명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인 '피스메이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비밀사항을 말씀드리겠다. 1992년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지지해 달라.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김용순 비서의 전격적인 미국 방문 이후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내왔다.

같은 논문에 따르면 1992년 6월 하와이 대학에서 개최된 한반도 통일 국제학술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은 "통일 후 필요하다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고, 1994년 김용순 대남당당 비서는 세계평화회의 베탄코트 사무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상징적 주둔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1996년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미군 주둔자체가 아니라 군사훈련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라며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흐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도 이어졌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 (사진=자료사진)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회고록에서 지난 2000년 10월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전하며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했었다고 소개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냉전 이후 우리 입장이 달라졌다. 미군은 이제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표현한대로 "북한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미군 철수를 주장해왔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아버지 김일성 주석때와 같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핵화만 선대의 유훈이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도 선대의 유훈"이라며 "북한이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암시를 줬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까지 하겠다고 나서고 오히려 빨리 매듭을 짓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와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우리 대북 특사단을 접견했을 때 주한미군을 용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3일 '남북정상회담 평가와 북미정상회담 전망'을 주제로 열린 세종프레스포럼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단장으로 방북했을 때 공개 메시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비밀 메시지가 있었다"며 "비밀 메시지 속에는 주한미군 주둔 이야기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해야 하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김정은 위원장까지 3대에 걸쳐 내부적으로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결국 지금의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정작 북한은 요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논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건강한 토론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시 북한이 주한미군의 주둔까지 용인하고 나선 것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독일이 통일되고 동유럽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체제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로 보인다.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은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도 체제 유지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김용순을 보내 미군 주둔과 체제 인정을 놓고 미국과 직접 거래를 하려했다"며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무시를 당하자 그때부터 본격적인 핵 카드를 준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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