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동5교 아래에는 수십년간 공동체 생활을 해오던 빈민들이 있었다. 헌옷을 주워 팔며 자활을 꿈꾸던 이들은 지난 2012년 강남구청의 강제철거 이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CBS노컷뉴스는 당시 쫓겨났던 빈민들을 추적해 대책 없는 철거정책이 지난 5년간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명하는 3부작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서울 강남구청 관계자와 이들이 동원한 용역 직원들이 넝마공동체 컨테이너에 들이닥친 건 지난 2012년 11월 28일 새벽 4시. 빗방울이 떨어지던 초겨울이었다.
이들은 컨테이너에서 자고 있던 공동체 주민들을 다짜고짜 끌어냈다. 강제철거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주민들은 이 때문에 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다.
◇ 몸과 마음에 새겨진 그날의 악몽
김덕자씨(사진=고상현 기자)
"거지새끼." 김덕자(79)씨가 당시 용역 직원에게 끌려나가며 들었던 말이다.
지난달 20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손자뻘인 이 용역의 모욕적 언사와 비웃음을 떠올리며 한동안 거친 숨을 내쉬었다.
퇴거를 거부하다 타박상을 입은 김씨는 이후 무릎 수술을 받았고, 이로 인해 지금은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는 "용역 깡패놈들이 비 오는데 길바닥에 던졌기 때문에 지금은 양쪽 어깨도, 무릎도 쓰지를 못한다"며 "병원에 매일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재영씨(사진=고상현 기자)
이재영(57)씨는 그 날 선친의 영정사진을 꺼내오지 못했다. 압류된 물품이 보관된 곳에 혹시 남아있진 않은 지 찾아봐달라고 용역 직원들에게 애걸복걸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뿐인 영정을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은 그의 마음을 여전히 무겁게 짓누른다.
이 씨는 "정말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철거였다"며 "지금도 그놈들이랑 비슷한 제복과 마스크 쓴 사람만 보면 분노가 치밀어 살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쿵쾅 뛸 정도"라고 성토했다.
(사진=홍영선 기자)
◇ "위험의 외주화로 속임수 쓰는 셈"당시 서울시는 3주간의 조사를 벌인 뒤 이런 철거과정을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강남구청에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이 살 거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신연희(70·구속) 구청장이 이끄는 강남구청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판단이다. 이주권고에 따른 이들에 대해서는 이미 임시거처를 마련했다"며 거부했다.
임시거처로 지정된 청소년자립센터 등으로 옮겨졌던 넝마공동체 일부 구성원들은 대부분 얼마 뒤 쪽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전문가들은 강제철거에 용역을 동원하는 대신 당국이 직접 나설 경우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집걱정없는세상 최창우 대표는 "행정당국 입장에선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편리하게 철거를 집행하고 있는 셈"이라며 "국가권력이 나서지 않는 것처럼 속임수를 쓰면서 일시적으로 공권력을 용역에 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용역 직원들은 일당 받으려고 죽기 살기로 충성하며 주민들을 깔아뭉개고 있다"며 "이런 구조는 그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구청에서 하면 비교적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자유연구소 이성연 연구원은 "용산참사 이후 관련 논의가 많았지만, 지금으로선 강제퇴거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 법 제정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지난 18대, 19대 국회에서는 폭력적 강제철거를 금지하는 '강제퇴거 금지법'이 발의됐었으나 별다른 진척 없이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지난달 관련 법안이 다시 발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