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투'여야 하나, 왜 미투는 '늦을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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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창원 기자)

 

최근 각계 각층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_Too) 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이와 더불어 피해자를 응원하는 위드유(#With_You) 운동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위드유 못지 않게 '왜 이제서야 털어놓는거냐' '가해자 망신주기 아니냐'는 식의 2차 가해도 만연하다.

피해자들은 왜 피해 사실을 늦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언론사나 SNS를 통해 고백할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15살 나이에 학원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딸을 둔, 1인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A 씨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다.

◇ "성폭력 당한 직후엔 기억 떠올리기도 벅차"

지난 2016년 10월, A 씨는 딸의 고백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딸 아이가 학원 원장과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알게 된 A 씨는 곧바로 학원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딸 아이는 처음에는 충격과 공포, 그 다음에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성폭력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안타까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무도 없는 문 잠긴 학원에서 15살 소녀가 성인 남성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끝내 자책은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아이는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는 '어디를 어떻게, 왼손으로 만졌냐 오른손으로 만졌냐'는 식으로 자세히 진행됐고 상처는 깊어져만 갔다.

어머니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딸 아이의 아픈 기억을 계속 끄집어낼까봐
참았다.

A 씨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위해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순간 충격과 공포는 한 번 더 찾아온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직후 곧바로 용기를 낼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사는 가해자…"또 다른 피해자 생길까봐"

하지만 A 씨는 몇 달 뒤, 1인 시위를 결심하기에 이른다.

경찰이 수사결과라고 내놓은 답이 처참했기 때문이다.

성관계가 이뤄진 것은 맞지만 '강제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학원장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물론 억울한 결정을 통보받고도 A 씨는 처음엔 용기를 내지 못했다.

혹여나 주변에 소문이라도 나서 어린 딸 아이가 상처를 받을 것을 걱정했다.

법적 절차를 잘 몰랐기에 항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지나가던 개에 물렸다고 생각하자'며 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날의 충격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딸은 좀처럼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원장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다름 아닌 학원 홍보 문자. 원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A 씨는 '성폭력 가해자가 일말의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본 그 순간,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한다.

A 씨는 "우리는 가정이 파괴될 만큼 힘들었는데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문제의 원인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대로 뒀다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학원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A 씨의 사례처럼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강제성 입증이 어려워 수사기관에 오롯이 의지할 수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아울러 피해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리지 않으면 가해자가 발뺌을 하거나 가해 사실을 숨기고 2차 가해를 저지를 수 있다.

피해자들이 언론사나 SNS를 통해 미투에 동참하는 이유기도 하다.

◇ 홀로 싸우는 외로운 고백…2차 가해에 상처 덧나

미투 열풍이 일기 전이었기에 A 씨의 싸움은 더 고독했다.

응원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엄마가 교육을 잘못한 거 아니냐' '평소에 처신을 잘못하고 다녔던 것 아니냐'는 식의 말들은 A 씨 모녀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그 중에서도 '얼굴 팔릴텐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냐.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뭐냐'는 말이 가장 아팠다고 한다.

A 씨는 "만약 가해자가 결국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상처가 아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가해자의 만행을 알리고 아이에게 '너는 죄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고 털어놨다.

◇ "미투는 용기 있는 고백…계란 던진다고 바위 깨지진 않지만 일단 던져봐야"

다행히 검찰은 해당 성폭행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했고 해당 학원 원장은 결국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A 씨는 "1인 시위를 할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상처가 컸지만 한 번도 1인 시위에 나선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투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며 미투에 대한 응원을 전했다.

A 씨는 "힘들겠지만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미투 동참자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바위가 깨지겠냐만은 계란을 던지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미투 운동이 성범죄에 더욱 경각심을 느끼게 하고 피해자들을 향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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