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중인 국군장병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요즘 50대 또는 60대의 지식인 층에서 "한반도에서 진짜 전쟁이 나는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전쟁이)난다면 4월이냐, 언제냐"라고 구체화 하는 분도 있다.
물론 그 분들이 어느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하는 것 같지 않다. 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나 '불안감'을 달래보기 위한 나름대로의 표현이랄까.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질문하는 분들은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갖고 있는 '한반도 철학'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 만다'를 누가 쪽집게처럼 알 수 있겠는가? 오늘날 국가와 정부의 목적은 전쟁은 예방하기 위해 존재한다. '전쟁'은 쉽게 꺼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한반도 전쟁론이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대통령은 물론 국방장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태평양사령관 등 미군 관계자들이 지금처럼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을 언급한 적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 '팬더 블래이드' 이어 '테이블톱 훈련'
미군은 지난해 말에도 노스 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래그(Fort Bragg)와 네바다 하늘에서 48대의 무장 헬리콥터가 실전 포병 공격을 받고, 군대와 장비를 이동시켜 목표물을 공격하는 훈련을 하는가 하면, 제 82 공수부대 군인들이 낙하 훈련을 벌였다. 이른바 작전명 '팬더 블래이드'이다.
지난주 뉴욕타임스는 또 하나의 대북전쟁훈련 상황을 보도했다.
이른바, '테이블톱 훈련(tabletop exercise)이다. 이번 도상훈련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미군을 어떻게 이동시켜 북한을 타격할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보도이다.
특히 이번 훈련은 북한과의 전면전을 염두해둔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북한 핵시설 장악을 위해 특수부대를 어떻게 전개할지, 최정예 부대인 제 82, 101공수사단이 북한의 지하땅굴에서 침투작전을 벌일 수 있는지, 미국의 유인·무인항공기가 북한의 방공망을 궤멸시킬 수 있는지 등을 점검했다.
그러나 도상훈련 결과는 매우 참혹하고 공포스러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훈련을 참관한 마크 밀리 미 육군참모총장은 "그 잔혹성은 모든 생존군인들이 지금까지의 전쟁경험을 뛰어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개전초기 며칠만에 미군 사상자만 1만명에 이르고 민간인 사상자는 수천명에서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됐다.
주목할만한 것은 도상훈련 결과, 미군 지휘부가 미군 단독으로 전쟁을 벌이기 어렵다는 잠정결론을 내린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의 공격 명령결정은 전적으로 한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고 전했다. 결국 북한과의 전쟁은 한국의 동의와 참전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다.
◇ 1994년 북핵 위기때 미군의 전쟁준비한반도에서 전쟁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미국 언론과 대북 전문가들의 칼럼을 통해 전해들을 뿐이다.
사실, 한국에서 전쟁을 가정하고 피해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가서도 안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1994년 북핵 위기를 돌아보자. 돈 오버도퍼가 쓴 '두개의 한국(The Two Koreas)'은 당시 전쟁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당시 미 국방부가 수립한 미군증강안을 보면 첫째, 병참·행정, 군수 부문 등에서 필요한 2천명의 추가병력과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이 절실히 요구한 대포병 전용 레이더와 정찰용 장비 등을 즉시 남한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둘째 안은 F-117 스텔스 전투 폭격기와 장거리 폭격기 등의 고성능 전술 항공기 대대를 즉시 출격시킬 수 있도록 한반도 인근기지에 배치하고 한반도 근해에 제 2차 항공모함 전투군을 파견해 이미 이동한 중무장 항모전단을 보강한다는 내용이었다.
셋째 안은 수만 명의 육군과 해병대 지상군, 그리고 훨씬 더 많은 공군 전투병력의 추가 배치였다. 그러나 이 역시 한반도의 전면전에 대응하기에 넉넉한 병력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른바 '작전계획 5027'에 따르면 한반도 전면전에 충분히 대응하려면 40만 명 이상의 병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당시 페리 국방장관은 훗날 "북한의 대응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주목할만한 것은 미군의 병력 배치 소식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당시 주한미군사령부의 고위장교들이 크게 걱정했다는 것이다.
오버도퍼는 "당시 한 장군은 걸프전 때 '사막의 폭풍' 작전을 북한이 우리보다 더 철저히 연구했다는 느낌이 늘 들었다. 걸프전으로 북한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즉 미국과 전쟁할때는 병력증강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라고 썼다.
당시 미군병력이 어느 정도 증강됐을 때 북한이 선제공격을 해올 것인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코피전략'처럼 '부분 타격'이 될 수 없고, 광범위한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으며 미군이 병력을 증강하는 순간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상공을 지나고 있는 미국 전략폭격기 B-1B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현대전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살상의 위력은 거대하다. 1994년과 2018년을 비교하는 것조차 무리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군사연습이 미국언론을 통해 보도될때마다 우리 가슴은 철렁거린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군의 계속되는 '대북 군사훈련'은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몰아가기 위한 압력 수단으로 이해된다.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를두고 매티스 국방장관은 "'실행가능한 군사훈련은 '외교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압력수단도 자꾸 반복되면 불안이 커진다.
한반도의 3월이 대북·대미 특사외교전으로 매우 뜨거워지고 있다. 한반도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역으로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를 학수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