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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평창 레터]이런 예쁜 마음들이 위대한 '팀 코리아'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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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26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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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효준아' 쇼트트랙 김도겸이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임효준을 안고 위로하고 있다.(강릉=이한형 기자)

 

17일 동안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울리고 웃겼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역대 최다인 92개 국가, 2920명 선수들이 참가한 동계스포츠 대축제의 102개 금메달 주인공이 모두 가려졌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비록 목표였던 '8-4-8-4'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의 안방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 은 4개, 동 8개로 종합 4위에 오르려 했지만 금메달 3개가 모자랐습니다.

그래도 의미있는 성과는 나왔습니다. 그동안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에만 집중됐던 메달이 다른 종목에서도 나왔습니다. 스켈레톤 윤성빈(24·강원도청)과 남자 봅슬레이 4인승(파일럿 원윤종)이 아시아 최초로 각 종목 메달을 각각 금빛과 은빛으로 물들였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여자 컬링 '팀 킴(Kim)'도 아시아 컬링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배추보이' 스노보드 이상호(23)는 한국 설상 동계올림픽 58년 역사상 최초로 메달(은)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한국 동계스포츠의 근간은 역시 빙상이었습니다. 쇼트트랙은 이번에도 최고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스피드스케이팅은 이번 대회 쇼트트랙보다 1개 더 많은 7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메달밭의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은 한국 선수단의 유일한 2관왕에 올랐습니다. 1500m와 계주 3000m에서 금빛 질주를 펼쳤습니다. 여자팀 주장 심석희(21·한체대)는 맏언니 김아랑(23·고양시청)과 함께 '전설' 전이경 싱가포르 감독 이후 20년 만에 2회 연속 계주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남자팀 임효준(22·한체대)은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500m 동메달을 보태 일약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은 초대 올림픽 매스스타트 황제에 등극했습니다. 이승훈은 앞서 열린 팀 추월 은메달까지 아시아 빙속 최다 메달 기록까지 세우며 전설을 써내려갔습니다. 500m에서는 이상화(29·스포츠토토)와 차민규(25·동두천시청)이 은메달을,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보름(25·강원도청)도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보탰습니다. 남자 1500m에서는 김민석(19·성남시청)이 아시아 최초 메달(동) 기록을 세웠습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폐회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평창=이한형 기자)

 

하지만 이들의 활약 뒤에는 묵묵히 뒤를 받친 이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개인전 메달은 없었지만 팀과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선수들입니다.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을 따낸 뒤 주장 심석희는 "동생들이 너무 많이 고생했는데 정말 기쁘다"면서 "애들은 많이 혼나기도 했는데 다같이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와서 너무 좋다"고 기뻐했습니다. 동생들은 바로 10대의 김예진(19·평촌고)과 이유빈(18·서현고)입니다. 이들은 개인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계주에서 언니들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했습니다.

심석희가 동생들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의젓한 마음으로 언니들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쇼트트랙 대표팀이 대회 전 훈련을 진행했던 지난 8일 강릉아이스아레나. 이날 대표팀은 훈련 뒤 맏형 곽윤기(29·고양시청), 심석희, 김예진이 인터뷰가 예정됐습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가장 먼저 곽윤기가 나왔고, 김예진이 뒤를 이었습니다. 김예진은 곽윤기의 인터뷰 동안 서서 기다렸습니다.

경험이 많은 달변의 곽윤기가 한참 인터뷰를 진행한 뒤 김예진에게 질문이 향하려던 순간. 방송 인터뷰를 마친 심석희가 믹스트존에 나타났습니다.(올림픽 등 국제대회 인터뷰는 방송-신문 순서로 이어집니다.) 자칫 둘의 인터뷰가 몰릴 수 있는 상황.

이때 김예진이 언니에게 먼저 인터뷰를 양보했습니다. 자신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심석희가 기다리는 상황을 염려한 겁니다. 심석희는 대회 직전 코치의 폭행 사건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데다 훈련이 부족해 체력적으로 염려가 됐던 터였습니다.

김예진은 또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함에도 "석희 언니니까 괜찮아요"라면서 기꺼이 순서를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심석희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믹스트존 구석에 앉았습니다. 자신도 힘든 훈련을 소화한 뒤였습니다. 곽윤기까지는 서서 기다렸지만 심석희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차라리 앉기로 한 겁니다.

동생의 배려 속에 심석희는 수월하게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온 김예진은 언제 힘들었냐는 듯 밝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이날 김예진은 북한 정광범(17)과 훈련 중 "서로 못생겼다"고 공격한 대화 내용을 들려줬습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얼마나 팀을 위하는지 김예진의 예쁜 마음이 읽히는 장면이었습니다.

'석희 언니면 기다릴 수 있어'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심석희(오른쪽)가 지난 8일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훈련 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예진(빨간 원)이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사진=노컷뉴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도겸(25·스포츠토토)은 곽윤기와 함께 계주 5000m만 뛰는 선수입니다. 개인전을 뛰는 임효준, 황대헌(19·부흥고), 서이라(26·화성시청)과 달리 한 종목만 뛰기에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김도겸은 남자팀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세속적인 잣대일 수 있으나 한 마디로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한 겁니다. 때문에 계주 5000m는 김도겸에게는 더 간절할 수밖에 없는 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승에서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2위로 달리던 임효준이 코너를 돌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것. 대표팀은 다시 레이스를 펼쳤지만 끝내 4위로 메달이 무산됐습니다. 경기 후 임효준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임효준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한 이가 김도겸이었습니다. 어쩌면 메달 무산이 가장 아쉬울 수 있는 사람이 김도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김도겸은 우는 임효준을 달랬습니다. 경기 후에도 김도겸은 아쉬움에 앞서 "앞으로 뭘 하든 이런 좋은 경험을 발판으로 더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성숙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정말로 괜찮니?' 쇼트트랙 김도겸(가운데)이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넘어진 임효준(189번)을 위로하고 있다. (강릉=이한형 기자)

 

스피드스케이팅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내 정재원(17·동북고)은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맏형 이승훈의 도우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습니다. 이승훈이 스퍼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후미에서 스피드를 조절하며 선두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정재원은 이승훈이 막판 질주에 들어가자 승부를 포기하고 맏형의 금메달 레이스를 지켜봤습니다.

경기 후 정재원은 "제 레이스가 우리 팀에 도움이 됐다는 것, 우리 팀이 승훈이 형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우승 직후 가장 먼저 정재원을 안아준 이승훈도 "같이 뛰어준 재원이가 너무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 치열하고 힘겨운 시대를 살면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잊고 지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팍팍한 삶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양보를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인색해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구 하나가 조금이라도 이익을 본다고 하면 특혜가 아닌지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묵묵히 팀과 동료를 위해 배려하는 선수들은 그래서 더 이 시대에 빛나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뿐이겠습니까? 남자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을 이뤄낸 뒤 이용 총감독은 쾌거의 비화를 들려줬습니다. 당초 2인승 선수였던 김동현(31)-전정린(29)에게 출전을 포기하고 원윤종(33·이상 강원도청)-서영우(27·경기BS경기연맹)와 4인승에 나가는 것을 제안했는데 흔쾌히 따라줘 값진 결과가 나왔다는 겁니다.

이런 예쁜 마음들이 위대한 팀 코리아를 만든 겁니다. 메달을 따낸 선수들만이 자격이 있는 게 아닙니다.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고 헌신하는 선수들 또한 충분히 자격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올림피언입니다. 평창올림픽을 빛내준 대한민국의 메달리스트들, 그리고 주목받지 못했지만 어쩌면 더욱 빛났던 선수들 모두에게 진정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고맙다, 재원아' 이승훈(오른쪽)이 24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 한 뒤 도움을 준 정재원을 안아주고 있다.(강릉=이한형 기자)

 

ps-어디 선수들뿐이겠습니까? 선수들을 이끈 코치진과 보살펴준 트레이너 등 선수단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쇼트트랙 대표팀 김선태 총감독은 이번 대회 언론 담당관 역할까지 도맡았습니다. 특히 각각 1500m와 계주 예선에서 넘어져 마음고생이 심했던 심석희와 이유빈 등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심초사했습니다. 혹시라도 상처를 건드는 질문이 나올까 봐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간곡하게 고사했습니다. 특히 이유빈에 대해서 김 감독은 "우리 유빈이는 보호해줘야 한다"면서 "질문은 내게 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사실 김 감독에게는 지난 2016년 12월 본의 아니게 곤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평창올림픽의 테스트 이벤트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기자회견에서 던진 "왜 남자팀은 여자팀에 비해 성적이 좀처럼 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최민정-심석희 최강 듀오의 여자팀에 비해 남자팀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2관왕 이정수 이후 이렇다 할 에이스가 나오지 않아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남자팀을 맡았던 김 감독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여자부는 정상급 선수와 격차가 아직 있지만 남자부는 거의 매번 월드컵 우승자가 바뀔 정도로 차이가 없다"면서 "남자팀에 대해 비난보다 격려를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결국 김 감독은 세심한 배려와 소통의 리더십으로 이번 올림픽의 선전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소치올림픽 노 메달에 그쳤던 남자팀은 모두 4개의 메달을 수확해냈습니다. 임효준은 1500m 금메달을 따낸 뒤 "감독님이 '너는 뭐를 하려고 하면 실수를 하니 그냥 마음 편하게 놓고 하라'고 해주셨다"면서 "그렇게 즐기면서 해서 금메달을 따니까 '거 봐 되잖아'라고 하셔서 '감독님 사랑합니다'고 말씀드렸다"고 하더군요.

김선태 감독님, 그때 질문에 절대 악의는 없었습니다. 남자팀은 물론 여자팀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준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김 감독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 분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질문에 저에게'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인터뷰를 전담하다시피 하며 대언론 담당관을 자처한 김선태 쇼트트랙 감독.(사진=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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